美 “새로운 계획 미리 소개했다”…北주장 정면 반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6일 15시 13분


코멘트
미국은 5일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에 대한 북한의 발표가 나온 뒤 3시간 만에 성명을 내고 구체적인 설명에 나섰다. 앞서 협상 직전까지 장소나 일시, 의제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던 태도와 달리 논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북측 주장을 반박했다.

미 국무부는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낸 성명에서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으며 북한 카운터파트들과 좋은 논의를 진행했다”며 “북한 대표단이 내놓은 발언들은 오늘 8시간 반 동안 이뤄진 논의의 내용이나 정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대표단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명시된 4개 분야별로 각각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new initiatives)을 미리 소개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이 미 측에 협상 결렬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정면으로 되받아친 것.

김 대사의 성명을 통해 보면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의 해체 시도, 미군의 유해 송환 등 북한이 취했던 조치들에 대한 상응조치를 요구하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성의 있는 화답 이후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미루며 제재 해제의 대가로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제시한 조치들은 협상의 본질인 비핵화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거나, 진행이 중단된 상황. 핵실험 중단도 이미 6차례의 실험을 진행해 개발 완성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추가 실험의 필요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소한 ‘영변 플러스 알파(+α)’ 수준의 비핵화 이행조치를 요구해온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 카드다.

협상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어느 정도 진행돼야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은 하노이 회담 이후 지금까지도 큰 변화가 없다”며 “다만 그 진행 과정에서는 제재 완화를 포함해 보다 유연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게 스티븐 비건 협상팀의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의 상응조치를 끌어낼 수 있는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미국은 북한과 같은 식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하거나 북한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를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미국은 스웨덴 측이 자국에서 2주 내에 북-미 간 실무협상을 재개하자고 한 초청을 받아들인다”며 북한과 협상을 지속해나갈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에서 지속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의 유산을 단 한 차례의 토요일(협상)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대한 현안인 만큼 양 측 모두 강한 (해결) 의지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하며 북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의 탄핵 조사에 직면한데다 대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려는 시도와 관련된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며 난타를 당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개인은 물론 국무부 전체가 이 사건에 연루돼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협상의 바퀴를 계속 굴려가며 추가 도발을 막고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도 “북한은 뭔가를 하고 싶어한다”며 대화를 지속할 의향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북한 달래기만으로 연말 시한까지 비핵화 진전을 가져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7개월 간의 탐색전을 거치고도 양 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음이 확인된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성과 없는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리스크를 짊어질 여지도 거의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미국 측의 희망적인 논평에도 불구하고 북-미 협상이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음이 명백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낙관적인 발언을 이어갔음에도 북한이 미사일 실험과 핵물질 생산을 계속한 것으로 볼 때 회담 결렬이라는 이번 결과가 놀랍지 않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간판(signature) 외교 구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가장 최근 신호”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