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닮은 회색 지붕, 목재 대들보, 넓은 마당…한옥 재해석한 스위스대사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6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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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7일 정식 개관을 앞둔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스위스대사(왼쪽)와 니콜라 보셰 버크하르트파트너 건축사가 건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달 17일 정식 개관을 앞둔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스위스대사(왼쪽)와 니콜라 보셰 버크하르트파트너 건축사가 건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키 작은 오래된 양옥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던 서울 종로구의 ‘돈의문 뉴타운’. 이제는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줄지은 이곳에 지상 3층 높이의 ‘낮은 건물’이 새로이 들어섰다. 기와를 연상시키는 회색빛 지붕을 얹고, 유럽식 정원 대신 텅 빈 마당을 갖춘 이 건물은 주한스위스대사관이다.

대사관 설계를 총괄한 스위스 건축사무소 ‘버크하르트파트너’의 니콜라 보셰 선임 건축사(54)는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에 영감을 받았다”며 “동시에 이 동네에서 사라진 조그만 주택에 대한 기억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7일 대사관 정식 개관을 앞두고 방한한 보셰와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스위스대사(62)를 지난달 16일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만났다.

회색 지붕, 처마, 목재 대들보, 격자무늬 창살, ㄷ자 건물, 넓은 마당…. 언뜻 보기엔 현대식 건축물 같지만 한옥의 요소를 구석구석 배치한 이 건물은 국내 대사관 중 최초로 한옥을 재해석해 지은 건물이라는 것이 대사관 측의 설명이다. 2013년부터 설계에 들어가 2017년 착공된 이 건물은 지난해 10월 준공됐다.

이달 17일 정식 개관을 앞둔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니콜라 보셰 버크하르트파트너 건축사(왼쪽)와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스위스대사가 건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달 17일 정식 개관을 앞둔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니콜라 보셰 버크하르트파트너 건축사(왼쪽)와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스위스대사가 건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셰는 “대사관의 중심 공간은 마당”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스위스 정부가 낸 주한대사관 설계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 전통 건축을 공부했던 버크하르트파트너는 ‘마당’의 기능에 주목했다. 보셰는 “주택의 중심부를 비워둠으로써 거주자 간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고, 마당을 둘러싼 건물들에 통일성이 부여된다는 점을 흥미롭게 봤다”고 말했다.

사무 공간, 손님 맞이 공간, 주거 공간 등 대사관 내 서로 다른 세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건물을 설계하고자 했던 그에게 한옥은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한옥 역시도 한 지붕 내 다양한 기능의 ‘방’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들에게 집에서 일하는 것 같은 편안함을 주는 건물을 짓고자 했던 의도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이같은 아이디어를 담은 버크하르트파트너의 ‘스위스 한옥’ 프로젝트는 익명으로 진행된 공개 입찰에서 70개 이상의 경쟁업체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됐다. 현대 건축으로 유명한 스위스에서도 한옥을 재해석한 건축 설계가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다만 보셰는 “한옥에 영감을 받았으나 이는 완전한 현대식 건물”이라고 덧붙였다.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대사관이 주변 환경과 이질적으로 보이지는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이 동네에서 사라진 작은 집들을 기억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대사관 부지에도 17m 높이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지만 비슷비슷한 고층 건물을 짓고 싶진 않았다”며 “건물의 층수가 낮을 때 (사무실보다는) 집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2016년 부임한 카스텔무르 대사도 한국 전통 건축물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카스텔무르 대사는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불국사”라며 “최근 방문했던 안동 병산서원도 아주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는 “새 대사관 개관을 계기로 한국 건축가와 스위스 건축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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