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로 옮겨붙는 ‘한일 갈등’… “톱다운 방식으로 해법 찾아야 할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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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어디로]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경제·산업계에서도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결정한 지난해 11월 21일 한 일본 방송사 기자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를 취재하는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경제·산업계에서도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결정한 지난해 11월 21일 한 일본 방송사 기자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를 취재하는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일관계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 되고 있다. 이미 선을 넘어서고 있다.”

1일 재계 관계자는 최근 한일 경제관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악화된 한일 외교관계가 되돌리기 힘든 임계점에 이르면서 그 여파가 경제계로 본격적으로 옮겨 붙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책임 인정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나서면서 경제·산업계의 위기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상황. 정부가 한일 문제에 있어서 ‘정경분리 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일 관계를 최소한으로 정상화하기 위해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뚜렷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文 “정경 분리” 공개 거절한 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일본 기업인을 향해 “경제적 교류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며 “(한일) 인적교류가 민간영역으로 확대돼 기업 간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문 대통령의 ‘정경 분리’ 발언에 대해 “일본의 기본적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면서 “일본 정부는 관련 기업과 긴밀히 제휴하면서 일관된 입장에 근거해 적절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지난달부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을 수면 위로 띄우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달 12일 송금과 비자발급 정지 등을 언급한 가운데 일본산 제품의 공급 중단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한국과의 무역거래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일본 경제계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반응에도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될 경우, 구체적인 보복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일관계의 여파는 통상과 경제단체 교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대다수 동남아 국가들이 속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하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2017년 한일 재무장관 회의가 무산된 데 이어 최근엔 5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일 경제인회의도 돌연 연기됐다.

여기에 지난달 일본 닛산이 올해 9월까지 예정된 르노삼성 위탁생산물량을 8만 대에서 6만 대로 감축한 배경을 두고도 자동차 업계에선 한일관계 악화를 거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닛산이 감축 이유로 제시한 르노삼성 노조의 부분파업은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문제인데 갑자기 물량을 줄인 것은 어느 때보다 불편한 한일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가시화될 경우 반도체, 스마트폰 등 한국 경제의 주력 품목에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 스마트폰 시리즈는 일본 산업용 장비 제조사인 화낙의 절삭기기 없이는 생산할 수 없고, 반도체 소재 중 불화수소는 스텔라, 모리타 등 일본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 한일 해법도 ‘톱다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 초계기 위협비행 등을 놓고 날선 설전을 주고받은 한일 양국 정부는 평행선을 그리며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의 배경을 두고 일본의 강경론이 변수가 됐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악화된 한일관계는 북핵 협상에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일 정상 간 ‘톱다운’식 해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일은 지난해 9월 25일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마지막으로 6개월 넘게 정상외교가 단절됐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현재 한일 정부는 상대가 먼저 나서주길 바라는 모습”이라며 “경제 안보 이익을 위해서 양 정부가 서로 먼저 만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용석 히토쓰바시대 법학연구과 교수도 “양국 정상이 만나 깊어진 감정의 골을 풀고, 분위기를 반전시켜 실무적인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면서 “일본이 공공외교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한국이 유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김지현 기자
#한일관계#정경 분리#톱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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