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주부’가 ‘위기의 학부모’로…美 유명스타·CEO 연루된 초대형 입시비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3일 20시 10분


코멘트
로린 러프린(왼쪽)과 펠리시티 허프만.
로린 러프린(왼쪽)과 펠리시티 허프만.
“‘위기의 주부’가 ‘위기의 학부모’로 전락했다.”

미국 유명 연예인과 최고경영자(CEO) 등이 대거 연루된 초대형 입시비리 사건이 터졌다. 해당 학부모, 입시 브로커, 대학 관계자 등 50명이 줄줄이 기소됐고 이들 사이에서 오간 뒷돈만 2500만 달러(약 283억 원)에 이른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1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보스턴 연방지방검찰청은 이날 브로커에게 거액의 뒷돈을 주고 예일, 스탠퍼드, 조지타운 등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킨 부모 33명을 기소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ABC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당찬 엄마 ‘리넷 스카보’로 열연해 한국에도 팬이 많은 펠리시티 허프먼(57). 수사 당국은 그가 역시 유명 배우인 남편 윌리엄 메이시(69)와 이 문제를 두고 대화하는 내용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메이시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인기 드라마 ‘풀 하우스’ ‘사인펠드’ 등에 출연한 로리 러프린(55)도 기소됐다. 자산운용사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 대형 사모펀드 TPG의 고위 임원, 유명대 교수 등 미 사회 지도층들도 줄줄이 연루돼 충격은 더 컸다. 사건을 맡은 앤드류 렐링 연방검사는 “미 입시비리 중 최대 규모”라며 “부모들의 범법 행위가 부와 특권으로 점철됐다”고 비판했다.

사건의 중심에는 입시 브로커 윌리엄 싱어(58)가 있었다. 입시 컨설팅 회사 ‘더 키 월드와이드’ 대표인 그의 부정 행위는 크게 두 종류. SAT·ACT 시험 감독관을 매수하고 대리시험을 치르게 한 ‘시험형’ 부정, 명문대 운동부 코치를 매수해 운동 특기생으로 입학시키는 ‘특기생형’ 부정이다. 학부모에게 받은 돈 중 일부는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를 코치에게 뇌물로 주는 형식이다. 사람마다 액수는 달랐지만 최소 1억 원 이상의 돈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LA타임스는 “상류층 부모들은 그를 ‘마스터 코치(Master Coach)’로 떠받들고 싱어는 자신을 ‘명문대로 가는 ’옆 문‘을 열어주는 사람’으로 홍보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싱어는 러프린의 두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조정팀에 넣어주는 대가로 50만 달러(약 5억6000만 원)을 받았다. 두 딸에게 실내에서 조정기구를 사용하는 가짜 사진을 찍으라고 조언하는 식으로 지원서를 위조했다.

로린 러프린(오른쪽)과 딸.
로린 러프린(오른쪽)과 딸.

허프먼은 싱어를 통해 첫째 딸의 SAT 답안을 조작해 무려 400점을 올렸다. 그는 싱어의 조언대로 딸이 학습장애를 앓고 있다는 허위 진단을 받아 시험 응시시간도 2배 늘렸다. 답안 제출 후에는 감독관을 매수해 답을 위조하도록 했다. 둘째 딸 또한 같은 방식으로 부정입학시키려다 덜미를 잡혔다. 일부 언론은 그가 미 연방수사국(FBI) 함정 수사에 걸려 범행 사실을 실토했다고도 전했다. 이 외 다른 운동 선수의 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지원서에 쓴 학생도 있었다. 일부 부모는 현금이 오간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페이스북 주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싱어는 이미 지난해 12월 사기공모 등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싱어와 학부모에 적용되는 혐의는 최대 20년 형을 살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자녀들의 기소 가능성은 낮다. 렐링 연방검사도 “입시 비리 주동자는 부모”라고 했다. 하지만 각 대학 자체규정에 따라 퇴학이 가능하고, 이들의 부정행위로 입학하지 못한 피해 학생들이 대거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여론은 폭발 직전이다. 특히 러프린의 둘째 딸인 소셜미디어 스타 올리비아 지아눌리(20)가 융단폭격을 맞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합산 구독자가 약 200만 명으로 엄마 못지않은 유명인이다. 누리꾼들은 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대학 생활에 관한 각종 게시물에 “너같은 사기꾼이 세상을 망친다” “어떻게 대학에 들어갔는지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려라” “감옥에서 필요한 물건을 배송시켜 주겠다”며 비난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USC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특정 개인의 잘못”이라며 학교와의 연관성을 차단하려 했다. USC와 스탠퍼드 등은 범죄에 연루된 코치들을 해고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