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람-기술-제도-홍보 모두 실패… ICBM 대응능력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실수로 미사일 경보… ‘하와이 38분 공포’에 반성 목소리

《“그들(하와이 당국)이 실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와이주 당국이 잘못된 미사일 공습경보를 발령한 지 하루 만인 14일(현지 시간) 이렇게 언급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그건 주정부의 일이지만 이제는 우리(연방정부)가 관여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선 140만 명의 하와이 주민과 많은 관광객들을 38분간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만든 ‘하와이 패닉’ 사건이 ‘시스템 강국’ 미국의 위기관리 체제에 큰 맹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날 “하와이 주정부가 허위경보 발령을 막는 합리적인 통제 제도나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 언론들이 지적한 ‘하와이 패닉’의 4대 문제점을 짚어 본다. 》 
 
● 1명 실수에 속수무책, “직원 2명이 동의해야 메시지” 보완

13일 오전 8시 7분 하와이 주정부 비상관리국(HEMA)이 발송한 잘못된 미사일 공습경보는 3명이 한 조가 돼 3교대로 24시간 근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직원의 단순 실수로 드러났다. 데이비드 이게이 하와이 주지사는 “근무 교대 중에 경보 시스템이 작동을 잘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과정에서 직원이 버튼을 잘못 눌러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와이 주정부는 뒤늦게 관리자를 포함한 2명이 동의해야 경보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도록 절차를 보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와이 주정부 당국자들의) 책임지려는 모습이 좋다”고 언급했지만, 현지에선 이게이 주지사의 ‘리더십 부족’을 꼬집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의 올해 재선 가도에 이번 사태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낡은 무선경보 시스템, 불특정 다수에 발송 반복… 집단 공포

미국은 2012년 자연재해, 테러, 전쟁, 유괴 등의 사고가 발생할 때 경보를 보내는 무선비상경보(WEA) 시스템을 구축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대량의 경보를 발송하는 노후 시스템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올해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 사태에서는 대량 경고 메시지가 불필요한 집단 공포를 자극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위치 정보를 확인해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경보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캘리포니아 산불에서는 즉각 대피해야 할 주민들에게 산불 경보 메시지가 발송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사고 징후를 무시하다가 큰 화를 겪게 되는 ‘하인리히 법칙’(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작은 오작동과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 허위 때 후속대책 없어, 문의 전화 폭주해도 정정 허둥지둥

하와이 주정부가 휴대전화 정정 메시지를 발송하기까지 38분이 걸린 것도 미국인의 분노를 키웠다.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허위 경보 이후 13분이 지난 오전 8시 20분경 “하와이로 날아오는 미사일이 없다”고 밝혔는데도 하와이 주정부는 25분을 더 허비해 혼란이 커졌다. 하와이 경찰 당국에 따르면 오보 발령 이후 오아후 911센터에 5000여 통의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HEMA 홈페이지도 1시간 반 정도 접속이 어려웠다. CNN에 따르면 하와이 주정부 매뉴얼에 허위 경보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오보 정정 메시지를 새로 작성하느라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하와이 주정부는 뒤늦게 오보 관련 메시지와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 대피요령 체질화 안돼, 주민들 “어디로 피해야 하나” 우왕좌왕

북한의 핵미사일이 하와이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이며, 공습경보 이후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10∼15분밖에 없다. 북한 핵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간 하와이 주정부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12월 핵 공격에 대비한 대피훈련까지 실시했다. 하지만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주민들은 우왕좌왕했다. 하와이 교민 박순녀 씨는 “깜짝 놀라 허둥댔다.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자는 아이들을 깨워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전직 군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미군 대위로 전역한 마이크 스타스코 씨는 뉴욕타임스에 “‘대피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떠올리려고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 정치권과 언론들은 “이번 허위 경보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증폭시켜 앞으로 진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효율적인 대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icbm#미사일#경보#하와이#트럼프#미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