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유류 공급 차단’ 못 밀어붙이는 트럼프…시진핑 눈치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7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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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대북 추가제재 논의 왜 더딜까?

지난달 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평가된 화성-15형을 발사한 지 8일이 지났지만 미국이 유엔을 통한 대북 유류제한 조치를 밀어붙이지 않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미 중앙정보국(CIA)이 ‘북한이 3개월 뒤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이어서 다양한 관측들까지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고 말했지만 대북 제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북한 문제는 적절하게 처리될 것”이라며 “해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우리 군대는 유례없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압박을 강화해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됐지만 기존에 언급했던 대북 유류 제한 등 추가 제재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화성-15형 발사 당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통화에서 ‘유류 공급 차단’을 요청하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중국이 공급 제한폭을 늘려야 한다”고 언급한 이후 이에 대한 미 당국자의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원유 동결과 정제유 30% 감축’을 담은 대북제재 결의안 2375가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것은 불과 8일만이었다.

미국이 안보리를 파행으로 몰고 가겠다는 결기까지 보이며 중국 등에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던 9월과 달리 이번에 중국을 압박하지 못하는 데는 대북제재에 협조적인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7일 “중국은 10월 북한에 대한 정제유 공급을 차단했다”고 보도했다. 북중교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HS) 코드가 2710인 석유 관련 제품에서 실질적으로 정제유로 볼 수 있는 제품의 대북 수출은 모두 ‘0’으로 표시됐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9월에는 자동차 가솔린과 항공 가솔린 등 다양한 종류의 정제유가 포함된 ‘2710-12’ 코드 수출액이 16만6106달러였다. 중유 제품을 포함한 ‘2710-19’ 코드는 10월 한 달간 수출액이 약 24만 달러였는데 세부 내역에 중유는 없었고 윤활유 등 대북제재와는 무관한 제품만 있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7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매우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에게 북한에 대한 더 강한 압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중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기존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는 중국을 더 압박할 경우 제재효과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국 자존심이 강한 중국을 향해 미국이 정상 간 통화 내용까지 공개하며 유류 공급 중단 요청을 압박해 중국의 반발만 샀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3일 “겨울철에 대북 원유 중단으로 북한 인민들이 희생을 치른다면 이는 비인도적인 재난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과의 전면적인 무역 금지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2500억 달러(약 280조 원) 상당의 계약이 성사되는 등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천문학적인 선물공세를 편 것도 ‘뇌물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가 통제 불능 상태로 가고 있는 것도 미국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독일의 한 언론은 “러시아가 최근 대북 제재 공조를 파기하고 북한에 막대한 석유를 공급해 지난달 유가가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북한을 고립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이고, 위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우리는 북한과 대화 채널이 있고 북한에 영향을 미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중 간 협력관계가 구축되는 틈을 파고들어 북한을 레버리지 삼아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보겠다는 게 러시아의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15일로 예정된 유엔 안보리의 ‘장관급 특별회의’가 대북 유류공급을 더 줄이는 추가 제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엔 안보리 의장국인 일본의 벳쇼 고로 유엔 대사는 “장관급 회의에서 성명이나 결정이 나올지는 불분명하지만 기존의 대북제재 외에 강력한 추가 제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유류 차단은 최후의 카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도 쉽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화성-15형의 기술적 완성도를 점검하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음주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 재무부의 대북 금융제재도 강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소식통은 “이번 제재 역시 (미국이 9월 발표한)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돈을 보내는 중국 금융기관을 이번에도 제재 리스트에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이 역시 중국의 반발을 감안한 움직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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