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권, 감시사회 논란 법안 강행 처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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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반발속 본회의 직권상정 통과
아베 “도쿄올림픽 위해 불가피… 국제사회와 對테러 연대 박차”
野-시민단체 “민주주의 짓밟혔다” 언론 “아베 개헌길, 거칠게 없어져”
일각선 “사학스캔들 물타기용”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일본을 감시사회로 만들 것”이라는 야당과 시민단체 반대를 물리치고 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일명 공모죄 법안)을 15일 새벽 참의원에서 강행 처리했다. 2012년 말 집권 이후 집단자위권 행사 허용 등 우경화 노선을 걸어온 아베 총리는 이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자위대의 존재를 평화헌법에 명기하는 개헌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이미 ‘2020년 새 헌법 시행’이라는 일정표도 제시한 상태다.

아베 정권과 자민당 등은 테러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설명하지만 이 법안의 내용이 태평양전쟁 중에 반전사상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된 치안유지법과 비슷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아베 총리는 이날 법안이 강행 처리된 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국제조직범죄방지조약을 체결해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확실히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은 처벌 대상의 범위가 277개로 지나치게 넓고, 테러 같은 중대 범죄를 사전에 계획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 치안 당국의 자의적 법해석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2명 이상이 범죄를 계획하고 1명이 자금 조달과 범행 연습을 한다면 계획에 가담한 사람 모두를 처벌할 수도 있다. 오키나와(沖繩) 미군기지 이전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 탄압에 악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때문에 일본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일본을 감시사회로 만들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해 왔다. 일본 정부는 공모죄 법안을 2003∼2005년 3차례 국회에 제출했으나 반대 의견에 밀려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했다.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도 편법적이었다. 여권은 이 법안을 참의원 법무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중간보고(직권상정) 형태로 상정해 처리했다. 일본 언론은 공모죄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해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재단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에 쏠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18일)에 처리해 달라”는 총리관저의 요청과 7월 1일 치러지는 도쿄 도의회 선거에 미칠 영향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강행 처리 움직임에 야당들은 전날 아베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며 저지에 나섰지만 15일 새벽 부결 처리됐다. 시민 500여 명은 14일 심야까지 국회 앞에서 개정 반대 집회를 가졌다.

공모죄 법안이 통과되자 야당은 “일본 헌정사에 중대 오점을 남겼다”, “민주주의가 짓밟혔다”며 반발했다. 거리의 시민들도 “권력 남용이자 대국민 사기”라고 규탄하면서 “국민이 더욱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쿄신문은 “공모죄 법안 통과로 개헌을 향한 아베 정권의 발걸음에 더욱 거칠 것이 없게 됐다”고 전했다.

원로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田原總一郞) 씨는 “아베 총리가 자신이 존경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숙제를 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강행한 뒤 전 국민의 비난 속에 총리직에서 물러난 기시가 못다 한 숙제는 첫째가 개헌, 둘째가 치안권 강화였다는 것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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