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틈새 파고들기’ 발걸음 빨라진 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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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리커창 잇달아 독일行… 서열 1, 2위 한달새 방문 이례적
자유무역 강조하며 美견제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주의와 미국 우선 정책으로 대서양 동맹의 한 축인 유럽과 사이가 벌어지고 있는 틈을 중국이 민첩하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흔들리는 EU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자유무역주의를 지지한 데 이어 EU의 중심국인 독일을 잇달아 방문해 대미 공동 전선 구축에 나설 태세다.

리커창 총리
리커창 총리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의 초청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3박 4일간 유럽 2개국을 공식 방문한다. 다음 달 초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 달여 만에 중국의 서열 1, 2위 지도자가 잇따라 독일을 찾는 셈이다. 홍콩 밍(明)보는 31일 “한 달 만에 국가주석과 총리가 잇따라 방문하는 것은 중국 외교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밍더(史明德) 주독 중국대사는 “세계 각국은 개방과 고립, 협력과 대치, 다자 협력과 단독주의 간의 선택의 기로에 있다”며 “글로벌 대국 관계가 조정을 받고, 세계화의 역풍과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에 리 총리가 임기 후 세 번째로 독일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의 독일 방문은 시 주석이 1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이후 주창하고 있는 개방과 자유무역의 기치로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주석
시진핑 주석

자유무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결성을 축으로 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금이 가기 시작한 뒤 미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본부 신청사 준공식에서 메르켈 총리 등 나토 27개국 정상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세금을 그만 뜯어먹으라”고 압박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31일 사설에서 “(메르켈과 유럽에) 미국이 더 이상 믿을 만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며 미국과 유럽 사이에 ‘깊은 분열’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도 독일이 전략적 유연성을 보일 의향을 충분히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망스러웠던 G7과 나토 정상회담 후 리 총리와 만나는 일정은 독일이 전략동맹과 비즈니스를 위해 미·영이 아닌 다른 곳을 둘러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완전한 독일판 ‘아시아 재균형’ 정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미국과 영국 없이도 먹고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려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리 총리는 방문 기간 중 독일 벨기에와의 정상회담과 함께 브뤼셀에서 열리는 제19차 중국-EU 정상회담과 중국-EU 비즈니스 서밋 등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리 총리가 EU의 단합을 강조하고 협력을 위해 통 큰 선물을 풀어 놓는 등 적극 공세에 나설 경우 ‘내 몫 찾기’를 강조하며 날을 세우고 간 트럼프 대통령과 대비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언론은 올해로 수교 45주년을 맞은 중국과 독일을 ‘하늘이 맺어준 배필(天作之合)’이라며 EU 중심국 독일과의 관계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독일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독일도 중국의 유럽 내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1512억9000만 달러로 중국과 EU 전체 교역액의 약 30%를 차지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한기재 기자
#중국#자유무역#보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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