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이현주]위안부 합의 파기, 한국이 먼저 말할 필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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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우리가 먼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먼저 합의 내용을 수없이 위반해서 ‘사실상 파기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파기를 입에 올리면 일본은 “한국이 또 골대를 옮겼다”며 한국을 비난할 것이다. 일본의 덫에 빠지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할지는 겉보기와는 달리 훨씬 더 면밀한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마찰 요인은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미중 대립,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에 따른 한일 간 역사 갈등이다. 한국이 미중 대립구도를 극복하는 길은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에도 참여하면서, 중국도 한국을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견 서로 상충되는 전략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일관계에 대해 정반대의 기대와 평가를 할 것이다. 한일관계가 좋으면 미국이, 좋지 않으면 중국이 만족하는 구도다. 한일관계는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전략적 상황과 득실을 평가하는 중요한 시금석인 것이다. 미국이 한일관계에서 한국인들의 입장에 좀 더 유의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압박과 대화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놓는(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전략을 쓸 것 같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협상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않으려면 미국의 정책 변화의 길목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정치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 방법과 규모를 구체화하고 국제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구도는 긴장대립 구도보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이득이 된다. 그러니 그런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일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한국 외교의 중대한 시험대이다. 특히 위안부 합의에 대한 신정부의 대응은 그 첫 단추다. 위안부 합의의 핵심은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다. 위안부 소녀상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일본 외상이 합의 직후 핵심 내용인 책임을 부정하고, 아베 신조 총리까지 사죄 의사를 부인했다. 소녀상을 이유로 주한 대사를 소환한 것도 합의정신을 위반한 것이다. 2017년도 외교청서도 합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신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일본의 위반 사실을 지적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 여부를 우선적으로 재확인해야 한다. 파기나 재협상은 그 다음 문제다. 위안부 합의를 얼마나 현명하게 다룰 것인가. 국내외에서 신정부의 전략적 외교 역량을 지켜보고 있다.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위안부 합의 파기#한일 위안부#북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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