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들 “흑인 탄압 과거 반성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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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大 총장 “노예제 가담 시인”… 예일-컬럼비아 이어 과거사 청산

1976년 미국 하버드대 자연사박물관 기록원들은 대학 박물관에서 발견한 서랍 속에서 끔찍한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웃통이 벗겨진 채 슬픈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흑인 노예 ‘렌디’의 사진(사진)이었다. 19세기 활동했던 하버드대 생물학자였던 루이 아가시는 흑인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논리로 노예제를 옹호할 때마다 이 사진을 활용하곤 했다.

이처럼 학계가 노예제 유지에 깊이 관여했던 과거는 미국 대학들이 청산해야 할 역사적 과제 중 하나였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하버드대 등 미국 대학들에서 최근 불고 있는 ‘과거사 청산’ 바람을 소개했다.

드루 길핀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3일 래드클리프 고등연구소에서 열린 역사 콘퍼런스에 참석해 “우리는 과거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없다”며 설립 초기 하버드대가 노예제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 콘퍼런스에 참석한 500여 명의 학계 관계자들은 각자 준비해 온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노예제 폐지 이전 학내에서 자행된 역사적 과오를 반성했다.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설립 초기 최소한 두 명의 총장이 노예들을 사 캠퍼스 내에서 부렸다. 학교 주요 기부자 중 일부도 노예무역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생물학적 지식을 동원해 흑백 인종차별의 정당성을 주장한 학자도 있다.

파우스트 총장은 “이번 콘퍼런스는 매우 중요한 역사 재발견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과거사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흑인 저술가 타네하시 코츠 씨는 “단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노예제에 연관됐던 대학들이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대학가는 이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예일대는 기숙형 공통학부 중 하나인 ‘존 C 칼훈 칼리지’의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노예제 옹호론자였던 칼훈의 이름을 학부에 거는 것에 대한 학내 반발 때문이다. 컬럼비아대는 1월 노예제에 연루된 대학의 역사를 조명하는 보고서를 발간했고, 조지타운대는 1830년대 대학에 고용했던 노예 272명의 후손들에게 입학 우대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흑인탄압#노예제#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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