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王 퇴위로 아베의 군국주의 개헌에 제동 걸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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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日王)이 어제 국민에게 보내는 비디오 영상메시지를 통해 “차츰 진행되는 신체의 쇠약을 생각할 때 몸과 마음을 다해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물러날 뜻을 전했다. 일왕이 살아 있는 동안 퇴위 의사를 밝히고 양위하는 것은 에도시대 후반기인 1817년 이후 약 200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83세인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해 공식 행사에서 순서를 헷갈리는 등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사를 하면서 일본 헌법하에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천황의 바람직한 위상이 어때야 할지를 날마다 생각해왔다”는 대목을 보면 또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일왕이 조기 퇴임 의사를 밝힘으로써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 중인 개헌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일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만 후임자가 즉위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왕실전범(典範)의 개정 작업에 들어가면 개헌은 아베 총리 임기 내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일본 헌법 1조는 ‘일왕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9조에서 ‘전쟁 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3년 12월 팔순 기자회견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소중한 것으로 삼아 일본국 헌법을 만들었다”며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개헌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러나 개헌안은 일왕을 ‘국가의 원수(元首)’로 명문화하는 등 정치성을 부여하고 교전권(交戰權)을 명시해 평화헌법을 무력화할 태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아베 내각이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 국가 총동원체제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즉위 이후 일본사회 일각에서 과거 침략전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풍조에 우려를 표명해왔다. 1990년에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우리나라(일본)로 말미암은 불행한 시기에 귀국이 고통을 맛본 걸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일왕가(家)의 핏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만큼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아키히토 일왕이다.

아베 총리는 일왕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도한 우경화로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퇴위#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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