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화를 뚫고 인술을 펼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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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포화를 뚫고 인술을 펼치는 이유
유서희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

2014년 이후부터 나는 국제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의사로서 에티오피아의 소외 지역, 내전의 본거지 남수단에서 활동해왔다. 가장 최근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에티오피아의 남동쪽 소말리 지역은 현지에서 가장 열악하다. 이곳에선 소말리 지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반군과 정부군간의 교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다수 민간인들은 수풀 깊숙이 들어가 생활하는 유목민이기 때문에 특히 병원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주 5회 요일별로 근처 지역에 이동진료를 나간다. 정부군과 반군간의 총격전이 발생한 다음날, 이동 진료를 나갈 것인지 여부를 놓고 많은 논의를 하기도 했다.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은 자칫 팀원들뿐만 아니라 진료를 받기 위해 인근 지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파견지역은 남수단이었다. 계속되는 내전 속에서 실향민 160만 명과 난민 60만 명이 주변 국가를 전전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멜루트 지역에 있는 세 개의 실향민 캠프에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향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딩카족이었다. 첫 번째 미션인 에티오피아에서 내가 돌보았던 누에르 환자들을 공격했던 그 딩카족이 이번에는 내 환자가 되어 나는 그들을 치료했다. 누에르족과의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그들 역시 분쟁의 희생자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 상황에서 인종, 종교, 성별,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오직 의료적 필요에만 근거해 사람들을 지원한다. 이는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이다. 이동진료는 병원 내 진료와 함께 멜루트 프로젝트의 중요한 활동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는 총칼이 허용되지 않고 종족에 대한 차별 없이 치료가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오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도 상당수이기에 이동 진료소 활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장에서 목격한 처참한 상황을 증언하고, 병원과 환자는 공격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최소한의 전쟁 규칙마저 무시되고 있는 실태를 고발하며 이를 막기 위한 노력에도 주력한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병원, 의료진, 환자들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비난한다. 전쟁의 기본 규칙들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오늘도 구호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이 같은 이념과 원칙을 바탕으로 의료활동 방향의 구심점을 찾는다.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가로서 핵심 임무는, 분쟁 지역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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