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교민 “곳곳서 물절약 구호… 대선보다 가뭄이 핫이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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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가뭄과의 전쟁’]

《 3년 6개월째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박준규 KOTRA 로스앤젤레스무역관 과장은 올 들어 이웃집 잔디가 누렇게 말라 죽은 광경을 자주 본다.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 당국이 ‘강제 절수령’을 내리면서 가정집 잔디에 주 2회 이상 물을 주는 것을 제한하자 많은 집들이 잔디밭 관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박 과장은 “신문과 TV, 공공기관 포스터 등을 통해 물을 아끼자는 구호를 하루에도 여러 번 접한다”며 “이 지역에서는 대선보다 가뭄이 더 큰 이슈”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지금 ‘가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강제적인 절수를 시행하며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충남 서부 지역 8개 시군이 20% 제한급수에 들어간 지 29일째인 4일까지 주민 대상 절수 캠페인 외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대조된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에 따른 가뭄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선진국의 사례를 참조해 강도 높은 가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 美, 전국 가뭄 상황 매주 인터넷에 공개

캘리포니아 주는 2012년 이후 4년 연속으로 강수량이 예년의 50%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12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다.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1970년대 이후 40년 가까이 댐을 짓지 못해 수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가뭄 심화에 한몫했다.

이로 인해 주내 저수조 대비 평균 저수량은 2009년 68%에서 올 상반기(1∼6월) 17%까지 떨어졌다. 미국 정부는 캘리포니아 주가 가뭄으로 27억4000만 달러(약 3조1016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뭄은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사는 교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캘리포니아 주 벼농사 면적이 예년 대비 30%가량 줄면서 로스앤젤레스 지역 한인마트에서 파는 쌀값이 20∼30% 올랐다고 현지 교민들은 전했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강력한 수요 관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올 4월 도시 지역의 물 사용량을 예년 대비 25% 줄이라는 절수 명령을 내렸다.

일부 지역은 식당에서 일반 식기 대신 일회용 접시, 포크 등을 쓰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쓰레기의 양이 늘더라도 설거지에 쓰이는 물을 절약하는 게 당장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공 화장실을 폐쇄하거나 빨랫감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 세탁하도록 유도하는 지역도 나오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가뭄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2006년 ‘국가 통합 가뭄정보 시스템법’을 제정하면서 상무부 산하 해양대기청(NOAA)이 주도하는 가뭄 모니터링 시스템이 마련됐다. 1995년 설립된 국립가뭄경감센터(NDMC)는 전국의 가뭄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가뭄경감센터는 연방정부, 주정부, 지역단체 등의 활동을 공개하면서 가뭄 극복을 위해 각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개발하고 있다.

○ ‘물 기근’ 싱가포르선 바닷물 담수화해 활용

가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장기 가뭄에 시달리는 호주의 경우 스프링클러로 잔디에 물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주는 것보다 물을 아끼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풀장에 1만 L가 넘는 물을 채울 때에는 반드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2007년 이후 가정에서 하는 세차마저 전면 금지됐다. 빗물을 활용할 수 있는 물탱크를 설치하면 한 집에 500호주달러(약 40만 원)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물 효율 등급제를 도입했다. 물 사용량이 많은 가전기구인 세탁기는 0∼4등급으로 물 소비효율을 매겨 최하등급(4등급) 제품은 판매 및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연평균 강수량이 2343mm로 한국(1234mm)보다 훨씬 많지만, 빗물을 저장할 지하수층이 부족해 ‘물 기근 국가’로 분류된다. 수자원 관리에 국가적 역량을 모으고 있는 싱가포르는 빗물을 모으는 저수지를 확대하고 바닷물을 담수화해 필요한 물의 10%를 조달하는 등 선진적인 물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사막지대인 이스라엘은 ‘국가인프라부’ 산하에 ‘물 위원회’를 설치해 종합적인 국가 물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가뭄 관리 정책을 참고해 우리 정부도 가뭄 관리를 위해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충남 서부 지역에서 주민들의 자율 참여를 바탕으로 제한급수가 실시되고 있으나 정부가 목표로 한 절수량에 못 미치고 있다. 절수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려면 정부가 지금보다 적극적인 대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물관리기본법 등 통합적인 수자원 관리를 위한 기본 정책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 돼야 한다”며 “이와 함께 적극적인 수요관리 대책을 시행해 물 낭비를 억제하고 국민이 가뭄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la#가뭄#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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