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식 구제금융 유로존 새 모델로 부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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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 아닌 투자자에게 은행 부실 책임 물어 ‘도덕적 해이’ 시비 차단
유로존의장, 확대 적용 시사

은행의 주주와 투자자 외에 고액의 예금자에게까지 부실의 책임을 물은 전례 없는 ‘키프로스 방식’으로 구제금융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사설에서 그동안 위기를 맞은 유로존 회원국에 대한 구제를 놓고 ‘도덕적 해이’ 시비가 잦았음을 상기시키며 “‘키프로스 방식’의 구제가 ‘규율이 필요하고 실패하면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경각심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26일 사설에서 “유럽이 드디어 현실을 깨달았다”면서 “키프로스 국민은 동의하는 이가 거의 없겠지만 키프로스는 최선의 결과를 얻은 것”이라고 평했다. FT는 “키프로스 해법을 계기로 다른 나라의 납세자들이 더이상 돌려받을 수 없을 돈을 지불하지 않게 됐다는 것을 명확하게 했다”며 “유로 위기가 촉발된 지 3년 만에 구제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키프로스 방식’은 지금까지 구제금융에서 일반 납세자들의 세금을 사용한 것과 달리 예금자나 고액 채권자 등 은행 부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구제 부담을 지도록 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가운데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로이터와 FT에 “키프로스 해법은 향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새로운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는 예금주까지 책임을 묻는 ‘키프로스 방식’을 다른 국가로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데이셀블룸 의장은 “은행이 먼저 자구책을 마련한 뒤 공적자금을 요구해야 한다”며 “은행이 스스로 자본을 확충할 수 없다면 유로존은 주주와 채권보유자 외에 예금 보장을 받지 못하는 고액 예금주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변국들과 납세자들이 부실은행의 비용을 내는 수년 간의 관행은 중단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키프로스처럼 은행의 비중이 과도한 룩셈부르크, 몰타와 부실은행 문제가 심각한 슬로베니아에 대해서도 “은행의 자본규모를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나온 후 우량 자산인 미국과 독일의 채권 가격이 상승하고 유로존 재정위기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올랐다. 25일 유럽 증시는 일제히 하락세로 마감했고 미국 주가도 떨어졌다.

‘키프로스 방식’이 유로존 은행의 구조조정 모델이 될 경우 부실한 남유럽 은행에 있는 자금이 안전한 독일 등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2대 은행인 인텔사 산파올레와 유니크레디트, 그리고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 등 유로 위기에서 부실이 노출된 유럽 대형은행들의 주가가 6%가량 빠지는 등 은행주가 요동을 쳤다. 그러자 유로그룹은 해명 자료를 내 “키프로스 해법은 예외적인 어려움에 따른 특수한 케이스로 확대 적용은 없을 것”이라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이 때문에 예금자 손실분담 해법을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진 데이셀블룸 의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로그룹의 논의 과정에서 이번 해법이 시장의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으나 금융에 전혀 경험이 없는 원칙론자인 데이셀블룸 의장은 이를 일축했다. FT는 농경제학자 출신인 데이셀블룸이 3주 전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SNS 레알을 전격 국유화한 장본인이라며 “그가 갑자기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니다”고 전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키프로스#구제금융#유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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