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주재 美대사 피살 후폭풍]서방 잔학테러 규탄 vs 이슬람권 시위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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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모욕 영화로 촉발해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진 반미 시위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서방은 폭력행위를 한목소리로 비난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시위가 급속히 확산되며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14일 이집트 최대 이슬람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전국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어 이번 사태 확산의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만든 영화 한 편이 ‘아랍의 봄’을 통해 민주화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안정을 뒤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 유엔·서방, 폭력행위 일제히 규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2일(현지 시간) 대변인을 통해 “유엔은 모든 형태의 종교 모독에 반대하지만 그 어떤 명분도 벵가지에서 발생한 잔학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안보리 회원국은 동기가 무엇이든 이런 행위를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리비아 당국은 누가 이 같은 혐오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는지 밝혀내고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희생자 가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영국도 비슷한 규탄성명을 냈다.

러시아 정부도 “모든 외국 외교사절에 대한 공격은 테러리즘의 표출이며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들끓는 이슬람권 분노

이집트에서는 11일에 이어 12, 13일에도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13일 수도 카이로의 미 대사관 주변에서 시위대 수백 명과 경찰이 충돌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시위대는 미국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화염병을 던졌다. 예멘 수도 사나에서도 이날 시위대가 미 대사관에 난입해 성조기를 불태웠지만 경찰에 밀려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1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에 앞서 북아프리카 모로코 튀니지와 수단에서도 12일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모로코의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에서는 시위대 약 400명이 미 영사관 앞에 모여 ‘오바마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튀니지의 수도에서도 시위대 100여 명이 미 공관 주변에 모여 성조기를 태웠다.

파키스탄 정부는 “9·11테러 11주년에 맞춰 나온 이런 불쾌한 행동(영화 제작)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공동체 간에 증오와 적의를 불러일으킨다”고 밝혔다. 이집트와 이란도 영화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리비아 새 총리의 힘겨운 과제

이런 와중에 리비아 의회는 12일 공학도 출신인 무스타파 아부 샤구르 전 과도위원회 부총리를 새 총리로 선출했다. 샤구르는 무아마르 카다피 체제가 무너진 이후 선거로 선출된 첫 총리로, 한 달 내 새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난립하는 무장세력을 제어하면서 불안한 리비아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한편 리비아 당국은 13일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대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용의자 여러 명을 검거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체포된 용의자 수와 정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윤양섭 선임기자 lailai@donga.com
#리비아#미국#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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