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銀 역할, 이젠 한계에 왔다” 스위스 바젤 BIS 연차총회 참석 60개국 중앙은행 총재-대표단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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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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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앙은행의 역할은 한계에 봉착했다.”

23일부터 이틀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에 참석한 60개 회원국의 중앙은행 총재 및 대표단이 고심 끝에 내린 진단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유동성 공급, 금리 인하 공조 등 수많은 정책을 써왔지만 결국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는 없었다는 무력감을 토해낸 것이다.

1930년 설립된 BIS는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기구로 매년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세계 금융안정을 위한 보고서를 채택한다. 올해는 82회째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참석했다.

BIS는 24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각국의 정책들은 급박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채무상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다”며 “전통적이든 ‘비전통적(unconventional)’이든 통화정책이 모두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보고서는 “중앙은행의 단기적 조치들은 그저 시간을 벌어준 것에 불과하다”며 “이 때문에 지속가능한 경제회복의 시기는 더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BIS는 이런 판단의 근거로 각국이 더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고갈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계 주요국의 정책금리는 이미 사상 최저 수준이고, 특히 미국 일본 등은 오랜 기간 제로금리 상태를 유지해왔다.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양적 완화, 국채 매입 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비전통적인 방법들을 동원했다. 통화량 관리를 통해 물가를 잡아야 하는 중앙은행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 대거 ‘돈 풀기’에 앞장선 것이다. 미국 유럽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이 이런 방식으로 공급한 유동성은 2008년 이후 5조 달러(약 5800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도 위기국면을 잠시 누그러뜨리는 효과는 거뒀지만 실물경제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BIS는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돈을 수혈 받은 금융기관이 이를 민간대출에 쓰지 않고 자신의 재무건전성 확보에만 이용했기 때문이다. 김 총재도 최근 ‘한은 창립 기념사’에서 “양적완화 정책이 금융시장 안정엔 도움이 되지만 민간부문에 대한 대출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같은 유동성 공급은 중앙은행의 자산만 공룡처럼 비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 각국 중앙은행의 총자산은 전 세계 경제규모의 30%(약 18조 달러)로 10년 전의 두 배 가량으로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의 자산 확대가 통화 공급의 증가로 이어져 각국의 인플레이션 및 원자재 값 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저금리에 실망한 자본이 신흥국에 몰리면서 일부 국가의 자산 버블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가져올 위험도 크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BIS는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이것이 기업투자나 경기 진작에 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중앙은행의 무용(無用)론’과는 다르다”며 “부실 금융기관을 선별적으로 구제하는 ‘최종 대부자’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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