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천, 美유학 허용” 전격발표… 反轉드라마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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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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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서 미국行 허용까지… 숨막혔던 4번의 터닝포인트

반전의 반전이었다. 파국을 향해 치닫던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 씨의 탈주 드라마는 4일 정부의 ‘유학 허용’ 발표로 가닥을 잡아 나가고 있다. 70여 명의 감시를 피해 산둥(山東) 성 자택을 빠져나온 지 12일 만이다.

○ 절묘한 ‘유학’ 해법

중국 외교부는 이날 류웨이민(劉爲民)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천 씨가 원한다면 다른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법에 따른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외국) 유학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이 천 씨의 여행 관련 서류를 신속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천 씨 문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초강경 공세로 나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전개됐다. 당국은 전날 오후부터 밤 사이에 천 씨가 입원한 베이징의 차오양(朝陽) 병원 앞에 있던 지지자들을 병원 내 모처로 끌고 가 감금한 채 무차별 구타했다. 또 이틀째 병원을 폐쇄한 채 미국 관리의 출입을 봉쇄했다. 베이징일보 등 관영언론들은 4일 미국이 중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기 위해 천 씨 문제를 ‘조작’했다며 당국의 공세에 가세했다.

하지만 유학이라는 절묘한 해법이 나오면서 사태는 급반전했다. 유학은 미중 양국의 명분을 세워주면서 동시에 천 씨의 희망을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행을 가능케 하되 망명이 아닌 일반적이고 적법한 절차를 밟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천 씨도 처음에는 중국에 남아 법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협상은 천 씨의 선택과 우리의 가치에 따라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해법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미중 양국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3일 재협상에 돌입했다. 여기에 미국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의 긴급 청문회도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천 씨는 청문회 도중 전화 연결을 통해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직접 호소했다.

그러나 미중 정부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중국은 국민들에게 미국을 등에 업으면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미국은 지난달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2·29 합의’가 깨지는 수모를 당한 데 이어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어수룩하게 대응하다 뒤통수를 맞았다. 외교 역량의 결점을 드러냈다. ‘유학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도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미 클린턴 국무장관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만나 이날 막을 내린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와 관련해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치하했다. 중국 외교부의 ‘유학 성명’은 이후 4시간 뒤에 나왔다.

이날 사건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영화보다 극적인 3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 기적의 탈출


지난달 22일 새벽. 자신의 집을 둘러싼 높은 담을 넘으면서 천 씨의 탈출은 시작됐다. 지지자와의 접선 장소까지 무려 200번이나 넘어져 피투성이가 되고 발이 골절되는 상처를 입었다. 접선에 성공한 그는 베이징으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지지자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추적을 피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에 대한 불법 가택연금과 폭력, 책임자 처벌 등을 원자바오 총리에게 요구하는 동영상을 찍었다.

한동안 그의 탈출을 몰랐던 중국 당국은 곧 전방위 수색에 돌입한다. 이때 천 씨가 주중 미국대사관을 임시 보호소로 선택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연락을 받은 미국대사관은 ‘인도주의적인 도움은 합법적’이라는 판단 아래 대사관 차량으로 그를 대사관 내로 진입시켰다. 이때 중국 측 국가안전부 소속 차량과 추격전이 벌어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전했다. 대사관 진입을 확인한 지지자 측은 탈출 후 그가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세상에 그의 탈출을 발표한다. 이번 탈출 드라마를 기획한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씨는 “할리우드 영화를 찍어도 될 만큼 드라마틱했다”고 말했다.

○ 긴박했던 미중 비밀협상


미국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29일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베이징으로 급파했다. 발리에서 휴가 중이던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는 휴가를 중단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다른 일로 베이징에 머물던 고홍주(미국명 헤럴드 고) 미 국무부 법률고문도 곧장 중국 측과의 협상단에 합류했다. 중국 측은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이 협상대표를 맡았다.

양국은 외부의 갖은 추측에도 천 씨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갔다. 곳곳에서 제4차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가 코앞이고 미국 대선과 중국 지도부 교체를 앞둔 민감한 시기를 감안해 최대한 신속하고 파장이 적게 해법을 찾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천 씨는 줄곧 미국행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은 천 씨와 그의 가족에 대한 확실한 안전보장 등을 약속했고, 천 씨는 미대사관 체류 6일 만인 2일 대사관을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클린턴 장관은 그에게 전화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 천 씨의 돌변과 미중의 인권 공방전

미국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병원에 머물던 천 씨는 밤사이 마음을 바꿔 3일 CNN 등 서방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망명을 다시 호소했다. 천 씨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을 향해 그와 가족의 구명을 긴급 호소했다. 이날 개막한 전략경제대화는 천 씨와 관련한 인권 문제에 묻혔다. ‘순진하게 중국을 믿었다’는 비판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천 씨의 신병을 확보한 중국은 전날보다 한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천광청#美유학#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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