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청, 망명 원치않지만… 가족과 병치료 명목 미국행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中 인권변호사 탈출 기획한 인권운동가 후자 인터뷰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망명이 아니라 병치료나 친지방문 등의 명분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중국 정가를 발칵 뒤집어놓고 중-미 관계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 시각장애인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41) 변호사의 탈출극 기획자인 인권운동가 후자(胡佳·39) 씨는 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천 변호사의 거취 문제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현재 베이징 미국대사관에 있는 천 변호사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다.

후 씨는 “당초 천 변호사의 탈출 목적은 망명이 아니었다. 중국의 인권운동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며 도피 장소로 미대사관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국가안전부가 천 변호사의 탈출을 알아채기 직전까지 갔었다. 다시 체포되는 게 시간문제인 상황에서 위험을 피할 만한 유일한 도피처로 미국의 보호를 택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일이 외교문제로 비화해 미 정부도 사건이 오래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현재로서는 천 변호사와 공안에 잡혀 있는 가족들이 자유와 안전을 얻는 게 최소한의 요구다. 불법 폭행자 처벌 요구는 일단 꺼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탈출 직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보내는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가족의 안전 보장, 불법 폭행자 처벌, 부패 척결을 요구했다.

후 씨는 현재 천 변호사의 미국행이 적극 검토되고 있지만 정치적 보호, 즉 망명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 변호사가 언제든 자유롭게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고 중국, 특히 베이징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 씨는 “천 변호사나 나나 범죄자가 아니라 합법적 권리를 가진 공민이다. 어디든 마음대로 갈 권리가 있다”며 “나는 지금도 외출할 때마다 많게는 5대나 되는 국가안전부 차량의 미행을 받고 전화 도청도 당하지만 누구든 만날 수 있고 자유롭다. 하지만 천 변호사는 7년 동안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에 갔다 자유의사에 따라 중국에 돌아온 뒤에도 적어도 지금 내가 누리는 수준의 자유와 안전은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교도라고 밝힌 후 씨는 2∼22일 사찰을 돌며 참선수행을 하기 위해 현재 안후이(安徽) 성 황산(黃山)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아랍의 봄’ 이후 중국의 인권 상황은 더 나빠졌다”며 “이번 사건은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일본도 관심을 갖는다. 한국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느냐.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 인권은 국경을 초월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탈출의 의미를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천 변호사도 자유를 찾았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 씨는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의 한국 민주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중국도 10년 안에 한국과 같은 민주국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또 “2003, 2004년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 실태를 우리가 고발했다. 탈북자들은 난민이다. 중국 정부는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을 반대했다.

후 씨는 “나와 천 변호사는 중국의 미래를 낙관한다. 누구도 중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는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전복선동죄로 3년 6개월을 만기복역하고 출옥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천 변호사의 탈출을 기획했다. ‘다시 투옥될 위험이 높지 않았느냐’고 묻자 “나도 겁이 나지만 불공정과 사악함이 마음의 양심을 덮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의 거취와 관련해 AFP통신과 홍콩 언론도 천 변호사의 탈출을 도운 미국 소재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 밥 푸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천 변호사가 치료 명목으로 미국행을 택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고 1일 보도했다. 미중 양국도 하루 이틀 내에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로 하고 천 변호사와 가족의 미국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AFP통신과 밍(明)보 등 홍콩매체가 1일 보도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