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이란이 여성 닌자를 양성한다” 서방 보도의 허무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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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여기자와 전화 통화해 알아보니

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여성 닌자 무술 수련생들의 모습. 프레스TV 화면 캡처
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여성 닌자 무술 수련생들의 모습. 프레스TV 화면 캡처
재미로 시작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분위기가 자못 심각했다. 지난달 초 화제가 됐던 ‘이란의 여성 닌자(忍者) 3500명 양병설’에 대한 취재 얘기다.

기자는 10∼11일자 ‘O₂’에 이란 여성 닌자들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하고 지난주부터 자료를 모았다. 먼저 서방의 언론 보도를 훑어보면서 닌자 훈련 중인 여성들의 복장과 무기 등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 결과 도복에 새겨진 ‘武神官(무신관)’이란 한자를 통해 그들이 일본의 ‘부진칸’(무신관의 일본어 발음)류 닌자 무술을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부진칸은 일본에 본부를 둔 무술단체로 1970년 하쓰미 마사키(初見良昭)가 설립했다.

여성 닌자 양병설은 허구

이어 여성 닌자들이 유명해진 계기가 이란 국영 방송인 프레스TV(www.presstv.ir) 보도(1월 29일) 때문임을 알게 됐다. 프레스TV는 이란 전역에서 불고 있는 닌자 무술 열풍을 소개했고, 인터넷에도 약 6분 분량의 동영상 파일을 올렸다.

그런데 방송 내용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보도를 본 영국 데일리메일 등 서방 언론들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등과 관련해 군사 갈등이 발생하면 여성 닌자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기사에 덧붙였다. 이런 기사는 다른 수많은 언론사(국내도 포함)가 “궁지에 몰린 이란이 자국을 보호할 여성 닌자 3000∼3500명을 양성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게 했다. 기자도 취재 중반까지는 이것이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좀 더 깊이 있는 취재를 위해 7일 이란에 국제전화를 걸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을 거쳐 휴대전화로 통화하게 된 기소 미샤 아마디 프레스TV 기자(1월 29일 보도 담당)는 “서방 언론의 보도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마침 지난달 중순에 한 이란 주재 서방 통신사 기자가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를 내보내 한바탕 난리를 치렀답니다.” 그녀는 지난달 27일 반박 보도를 내보냈으며, 해당 통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다고 했다. 그에 대해 기자가 확인을 시도했으나 해당 통신사 기사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았다.

아마디 기자에 따르면 소동의 핵심은 닌자 도장 여성 수련생의 코멘트(“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란인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를 근거로 서방 통신사가 ‘이란이 여성 암살자를 키우고 있다’는 뉘앙스로 보도한 것이었다.

북한이 남한 침공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이에 대해 아마디 기자는 “통신사 기자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도질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 기자는 수련생에게 ‘당신 나라가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어요. 만약 누가 당신에게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실 건가요? 당연히 나라를 지키겠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닌자 무술을 수련하는 여성들은 정부나 군대 소속이 아닌, 순수한 민간인이란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방송에 나온 여성들은 축구나 테니스를 하듯 스포츠 활동의 하나로 무술을 배웁니다. 그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주부이고요. 이란 여성들 사이에서는 무술이 인기가 있어요. 9세인 제 딸도 학교에서 가라테를 배웁니다. 무술은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는 ‘폼 나는 일’로 인식되기도 하죠.” 사실 이란 여성들은 그동안 태권도나 우슈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왔다.

기자는 내친김에 질문을 하나 더 던져봤다. “이라크는 걸프전에서 여성 특공대를 활용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여성 경호원을 많이 활용했다. (실제로 아이샤란 경호원은 1998년 카다피에게 날아드는 총알을 몸으로 막아냈다.) 이란에도 여성 특공대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러자 “여성 경찰이 있고, 군대에 의료, 행정 등 일부 비전투병이 있기는 하지만 여성 전투병은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들었다는 것이 조금 찜찜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마디 기자의 보도에는 그가 고무 표창을 목봉으로 막아 보거나, 어설프게 바닥을 구르는 장면 등이 섞여 있었다. 그저 ‘화젯거리’를 다뤘을 뿐 애국이나 국방 같은 심각한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서방 언론의 보도 중 가장 ‘온건’한 편에 속했던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기사조차도 ‘이란 여성들이 세계에서 가장 심한 사회적 차별을 딛고 꿋꿋하게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아마디 기자는 밝아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란에는 한국과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알고 보면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아요. 전통을 소중히 하고 어른을 공경하니까요. 저는 시간이 없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이란에선 페르시아어로 더빙돼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가 꽤 인기랍니다.” 한류 덕을 조금이나마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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