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백수 해외로… 2012 오디세이의 방랑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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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못 믿어 돈은 침대 밑에… “2차 구제금융 받아도 그리스 장래 불투명”
“진짜 빈곤은 시작도 안해” 귀농자 2년 새 4만 여명


그리스 아테네에 사는 페트로 바피아디스 씨(56)는 지난해 9월 건설회사에서 해고됐다. 회사는 한때 직원이 9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제법 규모가 컸지만 지금은 파산 직전이다. 유치원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부인 월급도 지난달부터 월 1730달러(약 195만 원)에서 1260달러(약 142만 원)로 줄었다. 생활비 걱정도 크지만 2000년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은 바람에 빚까지 진 상태다. 20대인 두 아들은 백수다. 그는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어 해외로 나가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다.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지금 그리스인들이 사는 법’이란 기사에서 국가부도 위기가 그리스 국민들의 일상에 가져온 변화를 자세히 조명했다.

지난해 상반기 그리스의 자살률은 2010년 상반기에 비해 40% 늘었다. 전체 기업의 4분의 1이 2009년 이후 시장에서 퇴출됐고 20∼24세 젊은이 절반이 실업 상태에 놓였다. 실직 상태인 한 여성은 최근 아테네 한복판에서 “아이가 아프지만 병원비를 낼 수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가난 때문에 아이를 잃게 됐다”고 소리치며 자살 소동을 벌였다. 한 여성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테네 시내에선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재활용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야외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가 ‘커피에 딸려 나오는 비스킷을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경제위기를 자책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구업체를 운영하는 파울 에브모르피디스 씨는 “유로존 통합 이후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렸고 ‘파생상품’ 운운하며 돈을 빌려 차를 사기 시작했다”며 “각종 보조금들이 그리스인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인조 모피 공장에 다니다 실직한 아나스타시아 창라를리 씨도 “힘들지만 연봉을 깎고 대출이나 지원금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게 유일한 살길”이라고 인정했다.

바뀐 경제 상황은 그리스인의 생활 흐름도 바꿨다. 나치의 지배하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쓴 책 ‘기아 대처법’이 불티나게 팔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은 이민과 해외 취업에 나섰다. 한 은행원은 “은행을 믿지 못한 시민들이 돈을 인출해 침대 매트리스에 숨기거나 앞마당에 묻고 있다”고 전했다. 에브모르피디스 씨는 “고속도로 통행료 3달러를 안 내고 무단 통과하기도 하고, 오른 전기 요금을 내지 않으려고 아예 전선을 끊는 가정도 있다”고 했다.

살길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행렬도 늘고 있다. 농업협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2년간 3만8000여 명이 귀농했다. 야생 허브를 이용해 차를 만들고, 포도밭에 양조장을 세워 와인을 생산하고, 마을 단위 올리브 오일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이 생겼다.

그리스인들이 점치는 미래는 어둡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예금이 바닥나는 연말엔 진짜 빈곤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아테네대 야니스 바로우파키스 경제학 교수도 “구제금융도 진정한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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