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대결장 된 한반도]다롄항에서 ‘龍의 발톱’을 보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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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랴크 정박지에서 본 격랑의 한반도

G2 대결장 된 한반도
온몸을 휘감는 전율이 엄습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항. 인근 아파트 꼭대기에서 카메라 망원렌즈를 바다 쪽으로 돌리는 순간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바랴크는 거대 중국의 위용을 과시하듯 카메라 렌즈를 꽉 채웠다.

열흘간 3차 시험항해를 끝내고 입항한 바랴크는 높은 파도에도 미동도 없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축구장 2배에 달하는 육중한 몸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게 아니라 흡사 바다를 꽉 누르는 ‘거대한 발톱’처럼 보였다.

길이 304.5m, 폭 70.5m인 바랴크의 선상에는 작업모를 쓴 인부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선미(船尾)에선 높이 50m가량의 대형 크레인이 쉴 새 없이 하역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미사일 발사대와 미사일 교란시스템 등이 보였다. 부두 인근에는 수송함 18척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고 함상의 포는 모두 덮개로 가려져 있었다.

취재를 끝내고 조선소 인근 아파트에서 만난 20대로 보이는 중국인 청년은 “당신들 외국기자 아니냐. 몰래 항모 찍으러 왔느냐”고 쏘아붙였다. ‘중화(中華)주의’의 부활과 ‘대국굴기(大國굴起)’를 상징하는 중국의 핵심 전력을 엿본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다롄에서 서쪽으로 47km 떨어진 뤼순(旅順) 군항에선 삼엄한 경비 속에 정박 중인 잠수함 여러 척이 목격됐다. 배수량 2600t급 최신형 디젤추진 잠수함으로 보였다. 중국은 1만2000t급 핵추진잠수함을 비롯해 모두 60여 척의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의 항모시대 개막은 본격적인 미중 패권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중국의 항모 보유가 아시아의 해양패권 제패는 물론이고 미국이 장악해온 태평양의 제해권까지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항모는 함재기 50∼80여 대를 싣고 이지스구축함과 순양함, 잠수함 등을 거느리는 ‘항모전투단’을 구성한다. 1개 항모전투단은 한 국가의 전체 군사력을 능가할 만큼 막강하다. 작전반경도 1000km에 달해 항모가 장악한 광활한 바다와 하늘은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다.
▼ “中항모, 美와 슈퍼파워 경쟁 개막 신호탄” ▼

뤼순항의 잠수함 기지 중국 잠수함 5척이 뤼순 군항의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다. 2600t급 디젤추진 잠수함으로 보인다. 중국은 모두 60여 척의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 뤼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뤼순항의 잠수함 기지 중국 잠수함 5척이 뤼순 군항의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다. 2600t급 디젤추진 잠수함으로 보인다. 중국은 모두 60여 척의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 뤼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미국이 서해에 핵추진 항모 조지워싱턴을 투입하려 하자 중국이 거세게 반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항모는 국가의 전략적 이익을 투사할 수 있는 강력한 파워”라며 “중국이 바랴크를 본격 운용하면 인민해방군의 작전범위가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항모에 막대한 투자를 한 이유는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적 파워를 갖더라도 항모 같은 전략적 자산이 없으면 영원히 미국의 패권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서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항모 전력이 주축이 된 해군력이었다. 미국은 10만 t급 안팎의 핵추진 항모 11척을 운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바랴크가 내년에 실전 배치되더라도 전력화까지는 길게는 10년이 걸려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항모대국’의 길로 들어섰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조만간 바랴크급의 국산 항모 건조에 착수해 2015년 취역시킬 예정이다. 또 6만 t급 중형 항모 2척을 건조하고 있고 4척을 더 건조해 2025년경이면 지금의 미국에 범접할 만한 항모 전력을 보유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국의 항모 전력은 장차 한반도 안보환경에도 큰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바랴크를 포함해 2척 이상의 항모를 주축으로 한 제4함대 기지를 하이난(海南) 섬 싼야(三亞)에 창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항모전단이 본격 가동되면 서해와 남해는 중국의 앞마당으로 전락하고, 각종 영유권 분쟁에서도 한국의 입지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한반도 주변 해역은 하이난 섬의 중국 항모 전력과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의 미 제7함대 항모 전력의 세력 대결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주요 2개국(G2) 패권대결을 틈타 북한이 모험적 도발을 강행한다면 한반도는 미중 패권경쟁의 충돌지대이자 동북아 신냉전의 화약고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롄·뤼순=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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