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환상의 모래성’… 中 베이징 테마파크 ‘원더랜드’ 14년째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9일 03시 00분


“亞 최대” 외치며 1996년 착공… 토지보상 갈등-외환위기 겹쳐
1년만에 공사 중단돼 폐허로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창핑(昌平) 구 난커우(南口)의 ‘원더랜드(亞洲沃德蘭)’. 미국 디즈니랜드에 맞먹는 테마파크로 조성하겠다던 이곳이 14년째 버려진 땅으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건 방치된 뾰족한 첨탑과 성벽, 철골 구조물이 전부다. 주변에는 사람 키보다 큰 풀들이 어지럽게 자라 있어 마치 중세 유럽의 멸망한 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판타지의 세상 대신 흉물스러운 폐허가 된 것이다. 입구에 붙어 있는 로고만이 이곳이 원래 공원이었음을 말해준다.

창핑 구 정부가 원더랜드 조성 계획을 추진한 건 1996년. 민간 개발업체와 손잡고 옥수수 밭이었던 곳을 40만 m² 규모의 아시아 최대 테마파크로 바꾸려고 했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능가하는 최고의 위락단지로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구 정부가 농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보상금을 둘러싸고 격한 갈등이 발생했다. 쫓겨나다시피 한 농민이 대거 들고 일어서 공사가 중단돼 버린 것이다. 더욱이 1년 뒤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져 경기가 얼어붙었다. 자금난에 빠진 개발업체는 종적을 감춰버렸고, 결국 구 정부는 새로운 업체를 찾지 못한 채 이곳을 14년째 방치하고 있다. 한 농부는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옥수수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폐허가 된 원더랜드를 가리켜 “중국의 개발 열풍이 몰고 온 부작용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중국의 부동산 개발 이익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해당한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각급 지방정부와 민간업체가 부동산 개발에 혈안이 돼 왔다. 일단 건축물을 지어 놓으면 가격이 급등하는 데다 이 과정에서 검은돈을 둘러싼 상납 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앞장서 농지를 팔아치우고 있다.

특히 권력교체기를 앞두고 다음 정권에서 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지방정부 지도부들이 한몫 챙기기 위해 무리하게 개발을 추진함에 따라 곳곳에서 마찰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저장(浙江) 성 닝보(寧波) 시는 한꺼번에 두 개의 대규모 위락단지를 조성하다 비용 낭비라는 여론이 일자 한 곳의 공사를 1년 가까이 중단한 채 공사 현장을 방치해 놓고 있다. 광둥(廣東) 성 루펑(陸풍) 시 우칸(烏坎) 촌에서는 지방정부가 위락단지 등을 짓기 위해 강제로 토지를 수용하려다 농민들의 저항으로 9월부터 넉 달째 시위가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엔 공권력이 모두 마을 밖으로 쫓겨난 해방구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베이징이나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에 아파트 건설현장이 방치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건설사가 부도나면 대한주택보증 등이 인수해 공사를 재개하지만 중국은 이 같은 제도가 없다. 이에 따라 지방정부가 현장을 인수하거나 제3자가 매입할 때까지 공사가 무기한 중단된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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