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베네수엘라 “물가가 사람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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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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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무상복지 확대이후 시중에 각종 보조금 풀려… 물가폭등 → 사재기 악순환
놀란 정부 가격상한제 시행… 생필품 품귀 더 심화시켜

텅 빈 정육점 냉동고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과이카이푸로 시장에 있는 정육점의 냉동고가 텅 비어 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가격상한제를 도입하자 식료품 생산업자들이 물품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사진 출처 CNN 동영상
텅 빈 정육점 냉동고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과이카이푸로 시장에 있는 정육점의 냉동고가 텅 비어 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가격상한제를 도입하자 식료품 생산업자들이 물품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사진 출처 CNN 동영상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과이카이푸로 시장. 전통요리 ‘할라카스’를 만들 쇠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에 들어간 주부 알바 바렐라 씨는 말문이 막혔다.

“고기 품절(No Beef).” 정육점 주인은 텅 빈 냉동고를 가리키며 한마디만 짧게 던졌다. 정육점과는 달리 인근 채소가게에는 색색의 과일과 채소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두 배, 세 배 껑충 오른 채소 값에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물처럼 마시는 커피의 부족도 심각하다. 마트의 한 점원은 “새로운 물품을 들여오자마자 돌아서면 동나기 일쑤”라며 고개를 저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최근 살인적인 물가 폭등으로 매일 식료품 구매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27.6%로 라틴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최고였다. 11월 한 달 동안 물가상승률만 2.2%로 전월보다 0.4%포인트가 올랐다.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이 부족해지자 ‘패닉 바잉’(시장심리의 불안으로 가격에 관계없이 매점·매석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CNN은 13일 보도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과거 남미 대륙에선 익숙한 풍경이었다. 1960, 70년대 브라질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연간 42%였고, 아르헨티나는 1977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연평균 333%의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두 나라는 경제 성장과 원자재 가격의 급등세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남미국들이 인플레이션 홍역에서 벗어난 지금 세계 13위 산유국이자 주요 광물자원 보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왜 물가 폭등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선심성 복지정책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제니퍼 매코이 아메리카스 프로그램 책임자는 “베네수엘라가 중앙정부로의 집중화와 차베스 대통령의 사회주의적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과도하게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차베스 정부는 12일 빈곤가정 자녀에게 월 100달러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다양한 복지 명목으로 보조금이 시중에 풀리면서 구매력을 상승시켜 물가 폭등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달 말 베네수엘라 정부는 총 1만5000개의 품목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치약, 비누, 기저귀와 같은 기초 생필품 18개는 아예 가격 동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가격상한제를 둘러싼 정부와 식료품 생산업자 간의 줄다리기가 오히려 악순환을 불러왔다. 가격상한제에 불만을 가진 생산업자들이 공급물품을 줄여 버리고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품귀현상이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호르헤 로이그 베네수엘라 상공인연합 부회장은 “가격상한제 때문에 공장들이 물품을 많이 내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있을 때 사자’며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정부 조사에서 200t가량의 분유를 창고에 쌓아둔 생산업체가 적발되면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가격상한제는 결국 생필품 부족 심화로 이어졌다. ‘눈 가리고 아웅’식 정책에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주부 마리아 드 아브레우 씨는 “우리가 양껏 분유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느냐. 친구나 지인을 대동해야만 가족이 겨우 먹을 만큼 살 수 있다”며 정부의 ‘1인당 분유 1캔으로 구매 제한’ 정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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