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정부 ‘눈엣가시’ 105세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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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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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방송, 저우유광 옹 일대기 소개

올해 105세의 중국 저명 언어학자 저우유광(周有光·사진) 옹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반체제 인사일지 모른다. 저우 옹은 50여 년 전 한어 병음(평音·핀인) 체제를 개발해 중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한 원로 대학자다. 미국 공영방송 NPR는 19일 “마땅히 사회적 존경을 받아야 할 영웅이지만 중국 정부는 그를 눈엣가시와도 같은 반체제 인사로 여기고 있다”며 그의 인생 스토리를 보도했다.

저우 옹은 지난 100년의 중국 역사를 회고하면서 자신이 영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중국어 번역을 맡았던 1980년대를 떠올렸다.

“‘6·25전쟁은 미국이 일으켰다’는 게 당시까지 중국의 공식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은 ‘북한이 남침했다’고 규정하고 있었지요. 번역을 하던 저로서는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아예 이 부분을 삭제했었죠.” 그는 “그 후 6·25에 대한 당국의 입장이 (북침에서 남침으로) 바뀌어 허락을 받고 그 부분을 다시 넣었다”며 “이는 중국 사회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증거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말했다.

저우 옹은 20세기 격동의 중국사를 관통한 ‘산증인’이다. 청(淸)조 말기인 1906년에 태어나 중국 최초의 서양식 대학인 상하이의 세인트존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뉴욕의 월가로 건너가 금융사에서 일하며 국제경험을 쌓았지만 1949년 중국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다시 중국행을 택했다.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우 옹은 당시 문자개혁을 추진하던 당국의 권유를 받고 언어학자로 변신해 1958년 동료들과 함께 핀인을 개발했다. 핀인은 이후 문맹퇴치에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고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중국어를 입력하는 기반이 돼 중국의 국제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저우 옹은 1960년대 말 문화혁명 때 ‘반동분자’로 몰려 2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 있었던 것을 계기로 공산당에 비판적인 시각을 키워갔다. 그는 “공산당은 전통문화를 말살함으로써 중국을 ‘문화적 황무지’로 만들었다”며 “덩샤오핑(鄧小平)도 개혁개방으로 뛰어난 정치를 했지만 1989년 톈안먼 사태가 그의 평판을 모두 망쳐 놨다”고 비판했다.

저우 옹은 100세 이후 저술한 책이 10권이나 될 정도로 아직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이 중 일부는 당국에 의해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저우 옹은 “지식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며 “아랍의 봄을 보며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정부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는 두려움이 없다. NPR는 “얼마 전 저우 옹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하는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가 다시 취소된 일이 있었다”며 “이젠 오히려 중국 당국이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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