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정책 ‘물가 → 성장’ U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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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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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의 늪 빠져든 세계경제… 경기부양이 더 시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년 만에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 국면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경제정책이 일제히 물가 억제에서 성장으로 ‘유턴’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진원지인 미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놨고 유럽은 물론 신흥국들마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재정·통화 긴축정책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 세계 경제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선진국의 경기부양 카드가 바닥을 드러낸 데다 벌써부터 ‘환율 갈등’의 전운이 높아지면서 국제공조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둔화와 물가급등으로 이중고(二重苦)를 겪는 한국 역시 성장과 물가를 놓고 딜레마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 글로벌 경제정책, 다시 성장으로

8일(이하 현지 시간) 유럽중앙은행(ECB)은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1.5%로 유지하기로 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진 데 따라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던 ECB가 두 달째 금리를 동결하면서 통화긴축 기조에서 한 발 물러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금리인상에 나섰던 신흥국들도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금리인하에 나섰다. 자원수출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며 물가불안을 겪었던 호주는 6일 금리를 동결했고, 물가가 7%에 육박하는 브라질은 1일 23개월 만에 금리를 내렸다. 미국은 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470억 달러 규모의 일자리법안을 제안한 가운데 이달 20, 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세계 각국이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물가 억제에서 성장으로 돌린 것은 글로벌 경제가 사실상 경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월의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미국의 4분기 경제성장률을 3.0%에서 0.4%로 크게 낮췄다. 일본과 프랑스, 영국도 4분기 0∼0.3% 성장하는 데 그쳐 ‘제로성장’으로 떨어지고, 독일은 4분기 ―1.4%로 뒷걸음질할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공조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제공조의 첫 테이프는 9일 프랑스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끊는다. 23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린다. 이들 회의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정책과 함께 재정긴축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어 선진국들은 글로벌 경기부양의 부담을 중국 등 신흥국으로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8일 “중국이 내수 강화와 위안화 절상에 나서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신흥국 역시 자국 사정이 녹록지 않아 국제공조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중국은 물가가 3개월째 6%대의 고공행진 중이고 실물경제지표마저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더욱이 최근 스위스와 일본이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신흥국이 선진국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를 절상(환율은 하락)시키기는커녕 경쟁적인 통화 절하로 환율갈등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 딜레마에 빠진 한국경제

글로벌 경기부양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 압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5.1%로 OECD 평균(102.4%)보다 크게 낮아 경기부양 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 달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등 물가잡기에 비중을 두던 정부와 한국은행의 분위기도 최근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적극적으로 국제공조에 참여해 경기부양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9월부터 물가상승률이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연간 물가상승률 목표인 4.0% 달성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재정건전성을 집권 후반기 주요 국정방향으로 잡아 섣불리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확대 정책을 내놓기도 어렵다. 성장을 위해서는 국제공조에 참여해 경기부양에 나서야 하지만 물가안정과 재정건전성을 위해서는 긴축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9월부터 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목표인 연간 4.0%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경기부양을 위한 국제공조가 본격화되면 성장과 물가 사이에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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