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절전합시다” 했더니… 불편 참고 21% 아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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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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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전력제한 71일 만에 조기종료ON일급 시민의식-新에너지 개발

어둠 속 빛난 시민의식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도심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사원들이 형광등을 끈 채 부분 조명에 의존해 일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어둠 속 빛난 시민의식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도심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사원들이 형광등을 끈 채 부분 조명에 의존해 일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원전 사고로 인한 여름철 전력 부족 사태를 우려해 37년 만에 발동된 일본의 전력제한령이 9일 해제됐다. 7월부터 시작된 전력 제한은 당초 이달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시민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71일 만에 막을 내렸다. 불편함을 꿋꿋이 참아낸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동안 너무 많은 전기를 낭비해왔다”며 반성의 기운마저 일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절약 기술을 보유한 일본 제조업은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노력을 통해 이전보다 더 강해졌고,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산업화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시민들 자발적 참여…신조어 유행


일본 정부와 전력당국은 동일본 대지진 후 원전이 대거 가동을 멈추자 도쿄 등 수도권과 지진 피해 지역인 동북지역의 기업과 상업용 빌딩을 대상으로 지난해 최대수요전력(피크전력)의 15%를 줄이도록 의무화했다. 일본 정부가 전력 제한을 발동한 것은 제1차 오일쇼크 때인 1974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규제 대상이 아닌 수도권의 일반 가정까지 절전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전력사정이 넉넉한 간사이(關西)와 규슈(九州)지역 등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수도권과 동북지역의 평일 전력 감소율은 각각 지난해보다 21.9%와 21.3%로 목표치(15%)를 크게 웃돌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력사용량이 10∼13%씩 줄었다.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 참여는 ‘암페어 다운’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시켰다. 전류 단위 ‘암페어’와, 가정이 전력회사와 기본요금이 적용되는 전기사용량을 낮추는 재계약을 맺었음을 나타내는 ‘다운’을 합성한 것이다. 6월 암페어 다운을 한 회사원 사와다 도모코 씨(50·여·도쿄)는 “계약량을 초과하면 배전반(두꺼비집)이 다운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전기제품은 쓰지 않게 된다”며 “매월 기본요금도 819엔에서 500엔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50대 여성 회사원 야마모토 교코 씨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쓰면서 전기요금이 작년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몸은 불편해졌지만 그동안 너무 전기를 낭비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고 했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일반 기업들도 적극적인 절전 노력을 펼쳤다. 컴퓨터 사용이 많은 도쿄 시내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사무실 사용 전력의 일부라도 자급하기 위해 사무실 책상마다 페달용 축전지를 설치했다. 사원들이 페달을 밟아가며 전력을 자체 생산해 일을 하는 것. 이 제품은 NHK 방송이 절전 아이디어 상품으로 소개한 후 올여름 대박이 났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평일 전력수요가 많은 오후 1∼4시에 도쿄 본사의 컴퓨터를 모두 끄게 했다. 대신 사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와 휴대전화와 태블릿PC인 ‘아이패드’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손 사장은 트위터에 “‘아이패드 타임’으로 30% 이상의 전력 절감 효과가 있었다”는 글을 올렸다. 자동차 회사들도 전력 분산을 위해 평일 이틀을 쉬고 주말에 공장을 가동하는 등 ‘휴일 변경제’를 도입해 전력 소비를 30%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

○ 에코산업 성장이라는 부수효과


전력 제한은 일본 산업계가 신재생에너지 등 에코산업에 박차를 가하는 기회가 됐다. 특히 조명기구 사용이 많은 24시간 편의점이나 대형슈퍼마켓 체인에서 기존 형광등을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대체하는 붐이 일면서 LED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LED 조명은 형광등에 비해 수명이 최대 7배에 이르지만 가격이 비싸 이전까지는 업체들이 사용을 꺼려 왔다. 일본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이온은 LED 조명기구 대체로 전국 370개 점포의 7, 8월 전력량을 평균 32% 줄였다.

이와 함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전기와 전력 수요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중개해주는 차세대 전력시스템인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연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최근 태양광 풍력 등 자연에너지 보급 확산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가 고정가격으로 구입해주는 제도를 추진하기로 한 것도 에코산업에는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난이 일본 국민들의 전기에 대한 재인식과 새로운 산업적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마이너스만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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