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선봉 카다피, 위기 순간엔 ‘美에 SOS’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 ‘카다피 이중성’ 속속 드러나
“美의 군사개입 재고 해달라”… 오바마-의원 등에 필사 로비
美 前국무장관 라이스 짝사랑… 요새서 ‘라이스 사진첩’ 나와

“미국과 시오니즘(유대국가 건설 운동)의 허수아비들이 무너지고 있다.”(2월 16일 국영 텔레비전 연설)

“수년간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6월 2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불과 4개월여 만에 나온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연설과 서한에 나타난 미국에 대한 태도는 마치 갑자기 몰락하는 그의 운명만큼이나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 ‘반미 선봉→구명 요청’ 오락가락 운명

1969년에 집권해 ‘혁명평의회’의장으로 불렸던 카다피 원수는 줄곧 아프리카의 ‘반미 선봉장’이었으며 미국과는 극도의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지금은 해체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등 각종 반미 무장단체를 지원했다. 1988년에는 영국 상공에서 270명이 탑승한 미국 팬암기 폭파를 지시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6년 카다피 원수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부르며 트리폴리의 대통령궁을 공습하기도 했다.

카다피 원수는 2001년 9·11테러 후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것을 본 뒤에는 대미 유화 자세로 돌아섰다. 2003년에는 팬암기 사건 유족들에게 보상을 약속했고 2004년에는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도 선언했다. 그 후 표면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까칠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유화책도 병행했다.

올해 2월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에서도 ‘재스민혁명’ 시위가 일어나자 반미적인 본성을 드러내면서도 정권이 붕괴 위기에 몰리자 카다피 원수는 미 정부에 ‘은밀하고도 절박한 로비’를 벌이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카다피 원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군사작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필사적 로비를 벌였다고 25일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카다피 원수는 6월 23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수년간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미국의 리비아 군사작전 동참을 재고해 달라고 사실상 ‘애원’했다. 카다피 원수가 ‘구명 요청’을 보낸 인물 중에는 미국의 리비아 군사 개입이 위헌이라고 반대했던 민주당의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도 있었다. 이에 앞서 4월에는 “당신이 미국 대통령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꼭 내년 재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나토군의 공습 중단을 호소했다.

○ “리자,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한다”

반군이 트리폴리에 입성해 24일 카다피 원수의 관저 등이 있는 밥알아지지아 요새를 장악했을 때 건물 내부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의 사진으로만 가득 찬 앨범이 발견됐다. 라이스 전 장관이 2008년 9월 미 국무장관으로는 55년 만에 리비아를 방문해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때의 사진들이다. 특히 그녀의 얼굴 부분을 크게 확대해 놓은 것이 많았다.

당시 카다피 원수는 라이스 전 장관을 초대해 극진한 만찬 대접을 했다. 라마단 기간임에도 단식을 중단하고 그녀와 식사를 했을 정도다. 카다피 원수는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목걸이, 다이아몬드 반지, 리비아 전통 현악기 등도 선물했다. 선물의 총 가격만 무려 21만 달러(약 2억2000만 원)가 넘었다. 카다피 원수가 라이스 전 장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는 2007년 카타르의 알자지라 TV와의 인터뷰에서 라이스 전 장관을 가리켜 “리자, 리자, 리자…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한다”며 “그녀가 자랑스러운 아프리카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