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요새 함락]시민들, 카다피 조형물 짓밟으며 “알라후 아크바” 환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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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극처럼 일단락된 시민혁명

“리비아 호라(리비아는 자유다).” “알라후 아크바(신은 위대하다).”

리비아의 반카다피군과 시민들은 23일 트리폴리의 밥알아지지아 요새를 장악한 후 이렇게 외쳤다. 지금이 전통적으로 자비와 관용을 베푸는 라마단 기간이란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2년간 철권을 휘두른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침실까지 들어가 약탈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밥알아지지아 요새 함락으로 거리 시위로 시작했던 리비아 민중혁명은 내전, 국제전으로 비화하며 대서사극의 막을 내렸다.

○ 리비아 한 시대 끝났다

요새가 함락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며칠간 집 밖에 나오지 못했던 트리폴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요새 안에서는 ‘약탈 축제’가 벌어졌다. 반군들은 금빛 카다피 조형물에서 그의 머리 부분을 떼어내 발로 짓밟았다. 영국 더타임스는 “마치 옛 소련 붕괴 후 레닌의 동상이 붉은 광장에서 쓰러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카다피가 외국 정상들을 영접할 때 사용하던 흰색 천막도 불태워졌다. 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카다피가 세운 ‘비행기를 움켜쥔 주먹 모양의 조형물’도 여지없이 산산조각 났다. 한 반군 젊은이는 “금붙이가 박힌 군용 모자를 카다피 침실에서 가지고 나왔다”고 감격해하며 “부모님이 카다피에게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요새 이곳저곳에서 무기를 획득해 자랑스레 내보이기도 했다.

통제되지 않은 시민들의 약탈이 밤새 이어지고 무기가 시민들 손에 흘러들어가면서 치안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리비아의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자 카멜 마그후르 씨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욱한 포연과 화염 연기가 걷히면서 트리폴리에 재스민 향기가 다시 전해지기 시작했다”고 반군이 트리폴리와 요새를 함락시킨 의미를 표현했다.

○ 거리혁명에서 정권탈환으로


리비아의 시민혁명은 2월 15일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발생한 시위가 도화선이 됐다. 1996년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발생한 정부군 학살로 희생된 재소자 유족이 자신들의 변호사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되자 경찰서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것.

경찰은 변호사를 석방했지만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민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에 자극을 받은 리비아 시민들은 정권 반대투쟁으로 전환했다. 그렇지 않아도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의회와 헌법을 폐기한 채 42년을 집권해 온 카다피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다피는 시위 1주일 만에 박격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며 유혈 진압에 나섰고 이게 결국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분노한 시민들이 총을 들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악화됐다. 리비아 내 부족 갈등과 세력 다툼도 내전을 확대시키는 동력이 됐다. 반카다피 세력이 동부 벵가지를 근거지로 3월 5일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를 세우면서 리비아에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운 정부군의 무력 공격이 시작되자 대규모 학살을 우려한 국제사회가 개입했다. 3월 1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오디세이의 새벽’이라는 작전으로 리비아 공급에 나서면서 리비아 사태는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 새 시대를 향해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5일 “이라크는 이제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더 큰 과제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 무스타파 압둘 잘릴 NTC 의장은 24일 성명에서 “8개월 내에 입법 및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할 계획이다. 우리는 민주적인 정부와 공정한 헌법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또 “카다피가 아직은 붙잡히지 않았지만 반드시 생포해 리비아 내 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잘릴 의장은 “우리는 그를 생포하기를 원하고 카다피가 반대세력을 다뤘던 방식과는 다르게 대할 것”이라며 “카다피는 오직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체포, 정치적 암살 등으로만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것”이라며 “새 정부는 과거에 체결한 각종 조약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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