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종말]리비아 재건시장 참여 ‘기대 반 우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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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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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길 열리는데, 유럽이 다 먹을라”

리비아 사태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건설 일감 수주와 식료품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반(反)카다피군을 지원해 왔던 유럽의 기업들이 혜택을 독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한국의 대(對)리비아 수출은 현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2월부터 급격히 줄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의 리비아 수출액은 올해 7월까지 1억1900만 달러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9% 줄었다.

○ “막혔던 수출길 다시 열린다”

5년째 리비아로 과즙음료를 수출하는 중소기업 A사는 23일 리비아 수출길이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업체는 작년 한 해 270만 달러 규모의 제품을 리비아로 수출했지만 리비아의 정정(政情)이 불안해지면서 전면 중단한 상태다. 현지 바이어와 계약을 하고 수출한 130만 달러어치는 현재 리비아의 항구에 묶여 있다. A사 관계자는 “식료품은 현지에서 수요가 많기 때문에 한두 달 내로 수출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내 언론과 알자지라 방송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내 건설사들도 리비아 건설시장에 재진출하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섰다. 국토해양부는 이날 오전 리비아 진출 건설사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건설사의 피해규모를 파악하고 피해보상 청구 방안을 포함한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건설사들은 현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는 등 후속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트리폴리, 벵가지 등 현지 공사현장이 가장 많은 대우건설은 현장에서 철수했던 정재학 트리폴리 지사장을 24일 현지로 급파해 공사 재개 여부를 점검할 예정이다. 리비아에서 26억 달러 규모의 5개 공사를 진행하던 현대건설도 정국이 안정을 되찾으면 단계적으로 공사 재개를 위한 인력과 장비를 투입할 계획이다.

○ “유럽 기업이 혜택 독차지할 것”

반면 내전 이후의 상황 전개를 걱정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유럽 국가들이 반카다피군을 꾸준히 지원해온 만큼 유럽 기업들이 우선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터키 기업과 함께 350만 kW급 발전소를 건설하다 2월 리비아에서 철수한 두산중공업은 프로젝트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 정부가 국가기간산업인 발전소 건설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사대금 지급 우선순위에서 프랑스 등의 업체에 밀려 자칫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 해 300만 달러 규모의 중고차를 리비아에 수출해 오던 중소업체 B사 역시 수출이 정상화되더라도 당분간은 고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리비아의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바람에 바이어들이 싼 제품만 찾기 때문이다. B사 측은 “최근에는 간간이 수출하는 중고차도 연식이 오래된 값싼 차량 위주”라며 “리비아가 완전히 안정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분간 피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KOTRA는 “다시 리비아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새로 들어설 정부의 정책과 시장 변화 등을 예측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리비아 건설현장 분위기 ▼

“건설현장을 보호하기 위해 쳐둔 펜스를 18일 반군이 수류탄으로 부수고 들어올 때만 해도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온합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서쪽 50km 지점에 위치한 하르샤 지역 주택건설 현장에 머물고 있는 한일건설 채석환 기술팀 부장은 2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반군의 보호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일건설은 리비아 내전이 악화되자 올해 2월 현장 근로자를 대부분 철수시켰지만 채 부장을 포함한 직원 일부는 현장에 남아 있다.

반군이 처음 공사현장을 찾았을 때만 해도 정부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며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한일 측 직원들을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채 부장이 “우리는 당신네 나라에 집을 지어주러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자 반군들은 “다른 건설사들은 모두 철수하고 없는데 당신들만 지키고 있느냐. 고맙다”라는 반응을 보인 뒤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 반군은 심지어 내전의 혼란을 틈타 기승을 부리는 폭도들로부터 건설현장을 지켜주기 위해 8명으로 팀을 꾸려 현장 경비도 서주고, 채 부장 일행에게 물과 쌀 등 먹을 것을 갖다 주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한국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채 부장은 “외국인들은 다 떠나는데 한국은 끝까지 리비아와 함께했다”며 “어딜 가든 한국인에게 현지인들이 ‘코레아 미아 미아(한국 좋다 좋다!)’를 외친다”고 전했다.

채 부장은 전후 리비아 복구 작업을 겨냥한 각국 건설사들의 수주전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보름 전부터 중국 터키 이탈리아 건설사들이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며 “리비아 기술 관료들은 정부, 반정부를 떠나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건설인력이 하루빨리 리비아 현장으로 돌아오도록 각종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이건혁 기자 reali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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