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사상 첫 강등]달러 제국의 추락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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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미국 신용등급 사상 첫 AAA→AA+ 강등
美국채 안전신화 깨져… 세계시장 후폭풍 경보

“이제 미국 국채를 ‘안전한 투자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1941년 진주만을 안전한 항구로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중대한 오류다. 현재 부채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다음 타자는 미국이다.”

지난해 2월 초 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인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다소 도발적인 발언이라고 여겨졌지만 1년6개월 만에 그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트리플A(AAA)에서 한 단계 낮은 더블A플러스(AA+)로 강등했다. S&P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등급 하향은 최근 합의한 재정적자 감축안이 미국의 부채구조를 안정시키기엔 부족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미국 정부의 정책운영 능력이 악화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S&P는 성명에서 “미국이 재정지출 추가 감축에 대한 합의와 금리 인상이 없이 국가채무 부담이 강화된다면 미국 신용등급은 2년 내에 추가로 하향될 수 있다”고 추가 강등까지 경고했다.

1860년 S&P의 모태회사가 설립된 이래 미국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처음이다. 무디스나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도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적은 없다. S&P는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 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꾼 바 있으며 올 4월에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번 S&P 결정의 적절성을 놓고 국제사회가 논란을 빚고 있으나 어쨌든 강등 결정까지 불러온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유지돼 온 현대 자본주의의 큰 틀에 금이 가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회사인 미국 핌코의 무함마드 엘에리언 최고경영자(CEO)는 6일자 FT 기고문에서 “미국의 경제적 위상 저하를 알리는 명확하고 커다란 신호”라며 “이번 강등이 새로운 금융시대의 서막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는 (세계 경제의) 변수가 아닌 핵심적인 상수(常數)였던 미국의 신용등급이 무너진 것”이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와 고용창출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사히신문도 7일 ‘달러 몰락의 서막’이라는 1면 머리기사에서 “미국 국채는 떼일 염려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져 왔기에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에 미 국채 등급 하락은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달러의 기축통화체제의 몰락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세계 소비시장의 26%를 차지하는 미국에 제품을 수출해오면서 성장해온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에는 더욱 영향이 크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달러체제 붕괴에 따른 지나친 원화 강세 현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수출이 전체 성장의 80%를 넘게 차지하는 한국으로서는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경쟁력의 약화는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상황에 대해 ‘모범답안’이 없다면서 섣부른 예측을 삼가고 있다. 다만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 경제권의 부채위기가 사그라지지 않는 한 세계 경제는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의 망령에서 상당 기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의) 부채 폭탄의 연쇄 폭발이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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