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사상 첫 강등]경제보다 ‘정치적 신용’ 강등… 美국채 투매 가능성은 낮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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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Q&A

《 사상 첫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전 세계가 놀랐다. 물론 당장은 미국 채권에 대한 투매현상 등 공황 상태가 나타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달러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주는 심리적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
○ 신용등급 왜 내렸나
美 정치권 부채해결 신뢰 못줘… 저성장도 영향

Q. ‘국가 신용등급 하락’이란 무엇인가.

A.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국채)의 신용도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더라도 향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투자 위험이 커지면 투자자들이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기 때문에 채권 발행국의 자금조달 비용이 그만큼 올라간다.

Q. S&P는 왜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렸나.

A. 미국의 국가부채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는데도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막바지까지 당파 싸움을 하면서 ‘미국이 부채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데 실패했다. 또 이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에도 상처를 줬다. 미국의 막대한 부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비롯된 오래된 문제였다는 점에서 경제적 요소보다는 정치적 요소가 등급 강등에 더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S&P는 합의안 자체도 미진하다고 보았다. S&P 자체적으로 미국의 부채 위기가 해소되려면 4조 달러 이상의 재정적자 감축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감축 규모는 2조1000억 달러에 그쳤다. 여기에 최근 미 상무부가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당초의 1.9%에서 0.4%로 대폭 하향 조정한 것도 등급 조정의 주요 원인이다.
○ 美 경제에 영향은
AA+도 ‘매우 안전’ 등급이지만 단기적으론 악재

Q. AAA와 AA+는 어떻게 다른가.

A. AA+도 아주 높은 등급이다. S&P 분류에 따르면 투자등급 AAA는 상환 가능성이 ‘극도로(extremely)’ 높고, AA+도 ‘매우(very)’ 높은 것에 해당한다.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또 미국은 여전히 GDP 기준 제1의 경제대국이고, 기축통화로 쓰이는 달러를 찍어내는 국가다. 지난주 재무부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는 2.34% 안팎으로 최근 10개월 내 가장 낮았다. 투자자들이 미국 채권을 안전한 투자처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Q.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채권 시장엔 어떤 영향을 주나.

A. 채권 금리는 보통 그 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예컨대 한국 정부가 외국에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할 때도 신용등급 수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이번 S&P 결정이 나오기 전 월가의 전문가들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킬 경우 장기국채 금리가 0.1∼0.7%포인트가량 상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이 지불할 이자 비용이 연 1000억 달러는 더 늘어난다. 이는 모기지와 신용카드,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 S&P 결정이 그 적절성을 놓고 논란을 빚고 있으며 다른 신용평가사들이 따라 하지 않는 상태여서 실제 국채금리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또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외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급하게 팔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에 국가 신용등급 하락이 채권 값 폭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미 국채를 대신할 다른 투자자산도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Q. 미국 증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A.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 경제 불안심리를 높여 주가 하락의 요인이 된다. 불안심리가 커지면 주식보다는 현금을 보유하거나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신용등급 하락은 단기적으로는 분명 악재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이 이번 충격을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단기적인 증시 타격도 빠르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Q. 그래도 미국 채권을 투매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나.

A.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지도 않다. 우선 기관투자가들이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미국 국채를 특유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감안해 신용등급과는 관계없이 별도의 투자 항목으로 분류한다. 미국 국채를 들고 있는 미국 은행들도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다 해서 손실에 대비한 현금 쌓기에 나설 계획은 아직 없다.
○ 신용회복 언제쯤
다른 나라 10년 이상 걸려… 美 추가 강등 걱정

Q. 신용등급이 강등됐던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떤가.

A.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일부 선진국도 과거 AAA 등급을 잃은 적이 있었다. 이들 나라도 단기적인 충격은 있었지만 차입비용의 상승 등 장기적인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주식시장도 빠르게 정상을 회복했다. 물론 미국은 초강대국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과거의 사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Q. 국제신용평가사들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높다. S&P의 이번 결정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나.

A. S&P를 비롯한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당시 이들 회사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채권에 매우 높은 신용등급을 매기는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다. S&P가 등급 강등의 이유로 든 미국의 정부 부채는 사실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더욱 늘어났다. 이번 등급 결정에 S&P가 스스로 영향을 미친 꼴이다.

Q. 미국은 언제쯤 다시 최고등급을 회복할까.

A. 전례를 보면 국가등급의 회복에는 평균적으로 10년 이상이 걸린다. 미국도 현 경제 상황을 봤을 때 곧바로 AAA로 돌아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S&P가 향후 전망도 ‘부정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등급 회복은커녕 추가 강등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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