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제재’ 1년 이란을 가다]“가샹게 코레”… 한국기업 ‘조용한 약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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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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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이란 중부도시 이스파한의 중심가. 수도 테헤란보다 훨씬 작은 도시이지만 영어시험인 토플 등을 광고하는 선전문구는 테헤란 거리에서처럼 쉽게 볼 수 있다. 이란의 서방문화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스파한=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25일 오후 이란 중부도시 이스파한의 중심가. 수도 테헤란보다 훨씬 작은 도시이지만 영어시험인 토플 등을 광고하는 선전문구는 테헤란 거리에서처럼 쉽게 볼 수 있다. 이란의 서방문화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스파한=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지난해 7월 미국이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를 선언하자 한국 정부도 이란 국영은행인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에 대해 일시적 폐쇄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미국의 요구에 한국정부가 동참함에 따라 이란과 한국 간에 불편한 기류가 형성됐다. 한국의 4대 석유 공급원인 이란이 수출 금지 등 강경책으로 나오면 한국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이란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을까. 이란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테헤란과 중부 도시 이스파한을 찾아 금융제재 1년 후 이란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26일 오후(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남부 전자제품 판매 중심가인 후에리 가(街). 컴퓨터와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서울의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한 곳이다.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 서너 곳 중 하나는 삼성이나 LG 마크를 단 대리점들이다. 고객들도 한국제품 사용법을 꼬치꼬치 묻고 있었다.

“가샹게 코레(한국 대단해요).”

이곳 사람들이 한국 기자를 알아보고 가장 많이 던지는 말이다. TV를 고르던 메흐디 시르다르 씨(35·회사원)는 “집에 있는 가전제품부터 자동차까지 어쩌다 보니 모두 한국산”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 기업의 선전은 가전제품뿐만이 아니다. 금융제재 후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기업들의 활동공간이 사실상 없어지자 오히려 한국 기업들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새 변수가 되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에 한국도 가세한 모양새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소리 내지 않고 활동을 하는 게 특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앞세워 이란 내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이고 있다.

테헤란 주재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이란의 건설·플랜트 시장 수요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국가 전부의 개발사업보다 많다”며 “중국이 최근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이란 정부는 파트너 찾기에 목말라 하고 있다. 석유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자국 경제에 산업화와 경제부흥의 물꼬를 터줄 수 있는 협력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란 외교부의 라민 메흐만파라스트 대변인은 “(이란의 파트너로) 한국만 한 조건을 가진 나라도 드물다”고 강조했다. 사막지대인 국토를 개발하고 정보기술(IT)로 미래 청사진까지 그릴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하는 것이다.

한중일 정세분석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란 정부의 한 인사는 “한중일 3국 중 한국이 이란과 파트너십을 가진다면 최고의 조합”이라며 “페르시아 왕국의 화려한 영화(榮華)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한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이 세계 4위. 천연가스는 세계 2위인 자원의 보고(寶庫)다. 자신감도 여기서 나온다. 한국수출입은행 테헤란사무소의 이태용 소장은 “이란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잠재력 충만의 시장”이라며 “경제제재가 풀리기를 기다린 후 액션을 취한다면 그때는 이미 떠나간 버스”라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했다.

이란 소비시장의 잠재력은 시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개방과 변화의 조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26일 이란 중부 이스파한 시내 중심가. 유적도시인 이곳은 수도 테헤란보다 대학생 수가 훨씬 적은데도 토플 광고가 자주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대학생 마수드 사파비 씨(24)는 기자가 토플책을 가리키며 흥미롭다고 하자 “미국의 경제제재와 토플 공부는 별개”라며 “나중을 위해 토플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청년은 “친구 중에 델과 HP 등 미국산 PC는 물론이고 아이폰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테헤란·이스파한=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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