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추락하는 그리스 - 비상하는 터키… 역사는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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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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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그리스가 암흑 같은 터키의 400년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룬 것은 2세기 전인 1822년이다. 한국은 일본의 35년 식민통치에 치를 떨지만 기간으로만 보면 그리스의 4세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오스만튀르크의 압제 속에서도 언어와 종교, 문화를 지켜온 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인구가 1100만 명에 불과하고 한국처럼 휴전 상태도 아닌 그리스가 세계 5위의 무기수입국인 것은 남의 지배를 오래 받았기 때문에 국방력이 강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터키를 향한 위협적 성격도 있다. 일찌감치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된 그리스는 겉으로는 인권과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뒤로는 얼굴조차 마주하기 싫은 앙숙 터키의 EU 가입을 막는 선봉에 서 왔다. 지금 그리스는 터키와 경쟁이 안 될 정도로 선진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근 3만 달러로 터키의 3배에 가깝다. 하지만 미래에도 과연 그럴지 현재 두 나라의 모습을 보면 선뜻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스는 나라 곳간이 거덜이 나 지난해 유로화 국가 중 처음으로 구제금융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한 게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실은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복지와 경쟁력 없는 비대한 공공 부문, 일상화된 부정부패와 탈세로 오랫동안 곪은 상처가 터져버린 결과였다. 그런데 1년 만에 또다시 국제사회에 비굴하게 손을 내밀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터키를 보자. 12일 총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사상 첫 3연임에 성공하며 터키식 이슬람 민주주의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그는 화려했던 오스만제국 시절 최고통치자를 뜻하는 술탄으로까지 불린다. 그리스가 지난해 경제성장률 ―4.4%로 고꾸라지는 동안 터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인 9% 성장을 구가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내친김에 헌법에서 군사정권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고 현행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다. 통치제도를 완전히 바꾸는 이런 파격적인 개헌은 그의 리더십과 대중적 인기, 높아진 터키의 위상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의 반독재 민주화 세력은 ‘이슬람 정신+서구식 민주주의+경제성장’의 세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고 있는 터키에 주목한다. 최근 터키에선 EU 가입을 애걸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추락하는 그리스와 오스만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비상하는 터키의 오늘이 흥미롭게 교차한다. 우리는 어떤가.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조지 버나드 쇼)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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