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도 중국식도 아닌 제3의 길 걷는 인도… ‘경제 수도’ 구르가온의 두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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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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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빌딩 10m옆 下水 악취 진동

인도 뉴델리의 위성도시인 구르가온은 부자 동네로 유명하다. 도심엔 최신 건물이 즐비하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위). 그러나 중심가에서 3km쯤 떨어진 슬럼가에서는 뜨내기 노동자 20여만 명이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고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인도 뉴델리의 위성도시인 구르가온은 부자 동네로 유명하다. 도심엔 최신 건물이 즐비하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위). 그러나 중심가에서 3km쯤 떨어진 슬럼가에서는 뜨내기 노동자 20여만 명이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고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최첨단 꿈의 도시’ ‘인도의 미래’.

구르가온이라는 도시에 인도인들이 붙여 준 또 다른 이름이다. 수도 뉴델리에서 남쪽으로 약 24km. 20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의 벽촌. 그러나 지금은 명실상부한 인도 경제의 메카다. 1인당 소득은 수도보다 높은 국내 최고. 코카콜라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의 현지 본사도 이곳에 밀집해 있다. 초호화 대형쇼핑몰만 26개.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도쿄에 꿀릴 게 없는 이 도시지만 뉴욕이나 도쿄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신호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찰도 드문드문 눈에 띄며, 공공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전기와 수도는 밥 먹듯 끊기고 제대로 된 하수시설도 없다. 루이뷔통과 샤넬 매장에서 10m만 가면 길거리에 생활폐수가 흘러넘친다.

21세기 최신 빌딩과 19세기 진흙탕 길이 공존하고 있는 이 도시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8일 “인도 경제의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중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무서운 신흥세력으로 꼽히는 인도. 하지만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사회적 인프라의 부실로 인도 경제는 ‘모래 위의 성’처럼 위태롭다는 지적을 받는다.

구르가온에서 시민들의 삶은 둘로 갈린다. 이곳에 본사를 둔 인도 대기업 ‘젠팩트’의 직원들은 천국에 산다. 그들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발전기 덕에 정전 걱정이 없다. 식수 역시 본사 정수기가 관리한다. 회사가 지은 아파트에 살며 통근버스로 출퇴근한다. 입주업체들이 함께 지은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물건은 전용 쇼핑몰에서 산다. 대부분 기업들은 젠팩트와 비슷한 서비스를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반면 도시 외곽은 지옥에 가깝다. 슬럼가에 사는 일용직이나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2달러 내외를 번다. 쪽방에 수십 명이 모여 자며 식수는 쓰레기가 둥둥 뜬 하천에서 길어 마신다.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지만 학교에 교사는 거의 없다. 성폭행과 폭력이 빈번한데 경찰은 순찰조차 하지 않는다.

이 기이한 공존(共存)은 인도 공권력의 무능력이 빚어낸 결과다. 현지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주정부가 발표한 도시계획 중 1%도 실행이 안 됐다. 그나마 착수됐던 치안 개선안 등도 예산이 없어 중단됐다. 뉴욕타임스는 “모든 걸 정부가 관할하는 중국과 달리 사기업이 주도하는 인도 경제는 공공인프라 구축을 뒷전으로 미뤄버렸다”고 진단했다. 뒤늦게 정부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선뜻 비용을 내놓는 기업은 없다. 시민운동가 라티카 투크랄 씨는 “어차피 뒷돈 받는 처지인 정부가 그런 제안조차 하기 힘들다”고 비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년 전부터 구르가온 거리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처음엔 하층민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중산층도 가담했다. 교통 체증과 쓰레기 투기가 갈수록 심해지는 데다 범죄가 도심까지 확산됐기 때문이다. 사설경비업체에서 일하는 라탄 싱 씨는 “그들만의 성에서 삶을 누리던 사람들조차 ‘정부의 존재 이유’를 깨달은 셈”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이 도시에도 변화의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개혁세력의 지지를 받은 새 주정부가 지난달 13일 치러진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언론인 산지브 아후야 씨는 “구르가온이 실패하면 인도 전체가 무너진다는 경각심이 발동한 결과”라며 “조만간 구체적 도시 재정비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정보기술업체에 다니는 산토시 코슬라 씨는 불안한 심정을 한마디로 말했다. “인도엔 이런 말이 있다. ‘정부가 나선 일 치고 안 망한 게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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