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주도 국제협의체 첫발 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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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경제 넘어 정치-군사 제 목소리… G7 대항마로 급부상

미국 골드만삭스의 보고서가 10여 년 전 처음 ‘브릭스(BRICs)’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주요 4개 개도국 경제를 통칭하는 경제용어였다. 하지만 브릭스 정상들이 14일 중국 하이난(海南) 섬에서 3차 회담을 갖고 정치 군사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합의 사항을 담은 ‘싼야(三亞)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상황은 바뀌었다. 브릭스는 바야흐로 서방 주요국 모임인 G7이나 G8에 필적하는 대항마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요 협의체로 부상했다.

○ 글로벌 경제 새판을 짜라


‘싼야 선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터져 나온 개도국들의 요구가 총망라되어 있다. 우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지배구조 개선 등 금융질서의 새판 짜기를 요구했다. 서방과 브릭스 국가들이 함께 참가한 주요 20개국(G20)의 역할을 강조하긴 했지만 분야별로는 서구 중심 질서에 대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도자 선택 문제를 포함해 IMF와 세계은행 등 금융기구를 개혁해야 한다”며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것으로 현재의 요구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세계은행 총재는 최대 기여국인 미국 측 인물이, IMF 집행이사 10명은 유럽인이 도맡아 했지만 이제 신흥국 지위 상승과 같은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조기 가입도 지지했다. 러시아는 현재 WTO 기존 가입국과 양자협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상들은 또 최근의 금융위기가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통화질서가 부적절함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싼야 선언은 “신흥 경제권은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한 자본 흐름의 위험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미국의 무역 및 재정적자에 따라 달러의 장기적 가치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정상들은 최근 유가와 식량가격 등 상품가 급변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싼야 선언에서 “글로벌 상품가격에 지나치게 변동성이 크다”며 “이것이 세계경제 회복에 새로운 위험요인이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원자재 파생상품 시장규제가 적절히 강화돼 시장안정을 해치는 활동을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입장은 최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식량가격 폭등이 이 지역 반정부 시위사태의 불씨가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협의체


정상들은 서방 주도의 리비아 공습에 대해 ‘평화적인 수단에 의한 해결을 지지한다’는 표현으로 반대를 나타냈다. 이는 브릭스가 단순히 경제협의체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브릭스 5개국 중 유일하게 리비아 공습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 원칙적인 지지를 나타냈던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이 같은 선언에 동의한 것도 주목된다.

중국이 주도해 올해 10회를 맞은 ‘보아오 포럼’은 3차 브릭스 정상회담과 싼야 선언으로 중국의 독무대가 됐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회담 전 각국 정상과 개별 회담을 갖고 협력을 다졌다. ‘싼야 선언’의 내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줄곧 주장해온 내용이다. 미국 등 서방 각국이 주요 현안으로 내세운 위안화 평가절상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브라질은 ‘위안화는 인위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협의체가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을 표방하는 것은 석유 등 자원을 주로 개도국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전략적인 필요도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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