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美최악 원전사고 현장,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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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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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곳곳에 ‘안전’ 문구… 주민들 6개월마다 비상 대피훈련

5일 오후 펜실베이니아 주 미들타운에 있는 스리마일 섬 원전 1호기 냉각탑에서 흰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4개의 냉각탑 중 1979년 사고가 나 가동되지 않는 2호기의 냉각탑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미들타운(펜실베이니아)=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5일 오후 펜실베이니아 주 미들타운에 있는 스리마일 섬 원전 1호기 냉각탑에서 흰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4개의 냉각탑 중 1979년 사고가 나 가동되지 않는 2호기의 냉각탑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미들타운(펜실베이니아)=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5일 미국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펜실베이니아 주의 소도시 미들타운. 주도(州都)인 해리스버그에서 16km 떨어진 조그만 마을로, 해리스버그 국제공항과 바로 맞붙어 있다. 여기서 서스쿼해나 강을 지나자 스리마일 섬(TMI·Three Mile Island)이라는 조그만 섬이 보였다. 한눈에 들어온 것은 원자력발전소 냉각탑에서 숨 가쁘게 토해내는 흰 연기였다.

4개 냉각탑 가운데 2개에서 흰 연기가 하늘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가동이 중단된 2개의 냉각탑(2호기)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32년 전인 1979년 3월 28일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현장이다. 미국 원전산업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돼 있는 곳이다.

기자가 도착한 1호기 원전 입구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경고신호를 무시한 채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 발전소로 들어섰다. “안전을 생각하라(Think Safety)” “안전하게 행동하라(Act Safely)”라는 주의 문구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직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냉각탑 1호기 윗부분에서 흰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1978년 완공된 이 원전의 2호기는 상업운전이 개시된 지 불과 4개월 만인 이듬해 3월 28일 오전 4시에 사고가 터졌다. 2호기에서 원자로 온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 사고가 발생한 것. 폭발 직전에 냉각펌프가 작동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인근 주민 10만여 명이 한꺼번에 대피했다.

원전이 위치한 강 건너편에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보트놀이를 할 수 있도록 강 언덕에는 보트가 즐비했다.

원전 바로 인근의 로돈데비타운에서 만난 카이스 마틴첵 씨(51)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자동차를 타고 볼티모어로 대피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무덤덤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이 당시를 잊고 있습니다.” 미들타운에서 ‘브라운스톤 카페’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는 그는 “좋은 동네이기 때문에 여기를 떠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은 마틴첵 씨와 생각이 비슷했다. 냉각탑에서 올라오는 흰 연기는 그저 낯익은 풍경일 뿐 삶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요인도 아니었다.

코노이타운 슈퍼바이저인 클라이드 피켈 씨(76)는 타운홀에서 기자와 만나 “비상 상황에 대비해 6개월에 한 번씩 대피훈련을 한다”며 “사이렌이 울리면 이곳에서 50마일 떨어진 타워 시로 대피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지진으로 원전이 파괴된 일본을 걱정했다. TMI처럼 강 근처에 원전을 세워야 하는데 해변가에 건설하는 바람에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많은 주민이 원전 사고에 무덤덤한 편이지만 백혈병을 앓고 있는 찰스 던 씨(45)의 경우는 달랐다. 미들타운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원전사고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다. 던 씨의 아버지는 23년 전인 44세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집안에선 백혈병과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잇따랐다. 숙모는 46세 때, 삼촌은 53세에 사망하고 사촌도 41세에 세상을 떴다. 던 씨도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사고 당시 아이와 여성만 대피하라고 정부가 권고했지만 강제사항은 아니어서 모든 가족이 대피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던 씨는 “가족과 친지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친구가 사고 이후 죽었다”며 “원자력규제위원회(NDC)는 역학조사 결과 방사성 물질 누출과 상관없다고 하지만 이들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리드 미들타운 시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강물에서 물고기 1마리가 튀어나와도 원전회사가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 준다”며 “스리마일 원전은 1979년 때보다 훨씬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미들타운(펜실베이니아)=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스리마일 사고 어떻게 났나 ▼
한국과 같은 ‘가압형’… 운전원 실수로 노심 용융


1979년 3월 미국에서 발생한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있기 전까지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를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중 5급으로 7급인 체르노빌 원전 사고보다 두 단계 낮다.

이 사고는 스리마일 섬 원전 2기 중 2호기에서 원자로에 압력을 가하는 가압기가 고장 나면서 발생했다. 가압기에 있는 압력 완화용 밸브가 열려 이를 통해 냉각수가 빠져나갔다. 냉각수가 유출되자 원자로 안이 뜨거워졌다.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히는 ‘긴급노심냉각장치(ECCS)’ 역시 곧바로 작동되지 않았다.

둘 다 운전원의 실수가 원인이었다. 첫 번째 실수는 운전원이 압력 계기판을 잘못 읽어 밸브를 닫지 않은 것이다. 뜨거워진 핵연료봉에 냉각수가 닿으면 핵연료봉이 깨질 것을 걱정해 ECCS의 작동을 주저한 게 두 번째 실수였다. 이후 원자로 안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해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사고가 난 2호기는 14년간 정화 작업을 거쳐 1993년에 영구 폐쇄됐다. 당시 1호기는 피해가 없었으나 재점검을 위해 운영이 중단된 뒤 1985년에 재가동됐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의 원전이 스리마일 섬 원전과 같은 ‘가압형 원자로’이지만 현재 운용하는 원전은 스리마일과 같은 구형 원전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대폭 강화된 원전이기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실제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세계의 원전 건설비가 4배 정도 늘었는데, 모두 안전장치 강화에 들어간 비용이었다.

박광헌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냉각수가 유출되더라도 국내 원전은 원자로보다 높은 곳에 있는 비상 물탱크에서 물이 원자로로 자동 공급되기 때문에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같은 일이 국내에서 일어나긴 어렵다”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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