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전문가 기고/앤드루 고든]<2>대지진 이후 日의 미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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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범위’ 넘어선 재난땐 ‘매뉴얼’ 탈피해야 재건 가능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 뒤인 3월 13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재난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했다. 아키히토 일왕도 전국 TV 연설을 했다. 1945년 아버지 히로히토 전 일왕이 라디오를 통해 일본의 항복을 선언한 이후 처음 한 연설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인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위해 스스로를 돌보자”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가 1945년에 “견딜 수 없는 일이지만 견뎌내자”던 연설을 연상케 했다.

일본인들이 이번 지진을 2차 세계대전에 비유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이번 재난이 ‘발달된 산업사회에 밀어닥친 가장 심각한 자연재해와 인재(人災)의 복합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태의 후폭풍 역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번 재난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어구는 아마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일 것이다. 지진해일(쓰나미)이 그렇게 많은 해안가 방벽과 예방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압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지진에 늘 노출된 일본이 오랜 기간 많은 노동과 기술력을 투자해 만든 시스템이 그렇게 허무하게 쓸려나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또 세계 최고 첨단도시인 도쿄(東京)에 전력의 30% 정도가 수개월 정도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사실 역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2008년 불어닥친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가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로 강력한 금융계의 대량살상무기(WMD)가 될지 상상할 수 없었듯이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이나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해야 할 고민은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한 범위 밖의 일’이 벌어질 때 어떻게 대처할지다. 가령 미래 에너지원으로는 어떤 것을 개발해야 하며 어떤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재건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도 있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사태는 개인이나 가족, 기업이나 국가에 있어 중요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줄 아는 상상력’과 그런 일을 헤쳐나갈 수 있는 판단력, 자신감임을 보여준다.

지금 일본인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금욕적이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며 약탈행위가 없었고 지역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은 대단히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지금 일본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겸양보다는 사상 초유의 도전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보여줘야 할 창의성이다. 일본의 미래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활발하고 치열하게 이뤄질수록 좋다고 본다.

나는 일본인들이 공동체를 재건하고 자신들의 인생을 다시 활기차게 만들어 나가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술력이나 경제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이 과연 창조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불행히도 불확실해 보인다. 그들은 과연 거역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응해 틀을 깨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앤드루 고든

■ 앤드루 고든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학)
―하버드대 라이샤워 일본학
연구소장(2011년 현재)
―하버드대 박사(일본사·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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