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2보다 잡스에 더 놀란 ‘71분 깜짝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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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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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시한부說’ 잡스… 신제품 발표회 등장


이번이 세 번째였다. 제품발표회가 끝나갈 무렵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낯익은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기술(Technology)’과 ‘인문학’(Liberal arts)이라고 적힌 두 갈래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지난해 1월 아이패드, 6월 아이폰4를 각각 소개하면서 보여줬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애플의 유전자(DNA)는 기술만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우리의 DNA는 기술과 인문학의 결혼입니다.” 이는 잡스가 애플의 철학처럼 소개하는 사진이지만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사실은 자신의 사업이 “예술과 과학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강조했던 잡스의 우상, 에드윈 랜드의 철학이었다. 즉석사진기 폴라로이드의 창업자 랜드는 1985년 잡스를 만나 이 얘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그해 자신이 세운 폴라로이드에서 쫓겨났다. 몇 달 뒤 잡스도 애플에서 쫓겨났다. ‘사업은 사업이고 기술은 기술일 뿐’이라는 사람들 앞에서 잡스와 랜드의 생각은 빛을 잃었다. 하지만 25년 뒤 세상은 그들의 아이디어에 환호를 보냈다.

○ 스타 CEO의 71분 쇼


2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바부에나센터에서 열린 애플의 제품발표회.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한 사람이 걸어 나오자 이 행사에 초청받은 기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무대 위에 특유의 복장인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으로 스티브 잡스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근 미국 타블로이드 주간지 내셔널인콰이어러가 보도한 ‘6주 시한부설’이 나돌면서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이날 등장이 더욱 극적으로 보인 것이다.

1시간 11분 동안 이어진 행사 내내 잡스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설명을 마칠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마치 무대에 오른 록가수가 곡 한 곡을 마칠 때 박수갈채를 받는 모습처럼 보였다. 잡스는 “몇 달 동안 (아이패드2를)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오늘을 놓치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복귀 시기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병가에 들어갔다.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도 받았던 터라 그가 병가를 냈을 때 애플의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 잡스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꼿꼿한 자세와 자신감 넘치는 어조, 여유 있는 유머는 최근 몇 해 동안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이날 모습만 봐서는 6주 시한부설은 근거가 없어 보였다. 이날 애플 주가도 0.8% 올랐다.

애플은 그동안 사상 최대의 실적을 계속 경신하면서도 잡스의 건강 문제와 경쟁사의 협공 등으로 끊임없이 위기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날 그가 공개한 수치는 놀라웠다. 애플은 지난해 4월 아이패드를 선보인 뒤 9개월 동안 아이패드만 1500만 대를 팔아 95억 달러(약 10조6400억 원)를 벌었으며 아이폰은 지금까지 누적 판매가 1억 대를 돌파했다. 특히 신용카드 정보를 애플에 등록해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앱(응용프로그램)이나 음악, 전자책을 살 수 있는 고객도 2억 명을 확보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만든 셈이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앱스토어에서 앱을 판매한 뒤 개발자에게 나눠준 금액도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08년 7월 앱스토어가 열린 뒤 10억 달러를 나눠줄 때까지는 23개월이 걸렸지만 10억 달러를 추가로 나눠주는 데 걸린 시간은 단 9개월이었다.

○ 이어진 독설


애플의 팬에게 무대에 오른 잡스의 모습은 환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특유의 독설을 쏟아내자 경쟁사들에게는 악몽의 대상이었다. 잡스는 “2011년은 모조품(copycats)의 해”라며 삼성전자, HP, 모토로라 등 경쟁사의 로고를 화면에 띄우고 노골적으로 비아냥댔다. 올해도 경쟁자들이 아이패드2를 흉내 내는 데 바쁘리라는 것이었다.

특히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에 대해서는 “유통점 판매는 200만 대를 넘어섰지만 소비자에게 실제로 판매된 경우는 아주 적을 것”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인용해 원색적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이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아주 순조롭다(quite smooth)’는 삼성전자 임원의 말을 ‘아주 적다(quite small)’로 잘못 듣고 쓴 오보라고 삼성전자가 이미 밝힌 바 있다. 잡스가 오보를 인용한 것이다.

발표회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잡스는 아이패드2를 만든 애플의 팀원을 모두 일으켜 세우고 관객에게 박수를 부탁했다. 마치 록스타가 밴드의 연주자들과 프로듀서 등 관계자에게 감사를 부탁하는 모습 같았다. 71분 쇼의 마지막이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더 얇고 가볍고 빠른 포스트PC” ▼
잡스가 말하는 아이패드2


“우리의 경쟁자들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태블릿을 그저 ‘차세대 PC(Next PC)’로만 봅니다. 하지만 애플에 아이패드는 ‘PC 이후의 PC(Post PC)’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2를 설명하면서 경쟁 제품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더 뛰어난 성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쓰기 쉽고 직관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화면 속 드럼과 기타 등 가상의 악기를 연주할 때 화면을 건드리는 손가락의 힘과 방향을 조절하면 음도 따라 변하는 음악프로그램 ‘개라지밴드’나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아이무비’ 등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와 함께 기계 자체의 성능과 가격도 주목받았다. 우선 아이패드2의 두께는 기존 아이패드의 3분의 2(8.8mm)로 줄었다. 이는 얇은 스마트폰으로 손꼽히는 아이폰4(9.3mm)나 삼성전자가 지난달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한 ‘갤럭시탭 10.1’(10.9mm)보다도 얇다. 무게는 와이파이 모델이 680g에서 601g으로 약 12% 줄었지만 배터리 성능은 그대로라 기존 아이패드처럼 10시간 연속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갤럭시탭 10.1은 599g이다.

아이패드2의 처리속도를 좌우하는 프로세서도 새로 개발한 1GHz(기가헤르츠) 듀얼코어 프로세서 ‘A5’를 사용해 기존보다 최대 두 배 빨라졌다. 듀얼코어는 하나의 중앙처리장치(CPU)에 두 개의 연산장치(코어)를 얹은 것이다. 이 외에도 앞면과 뒷면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영상통화가 가능해졌으며 큰 TV에 연결해 아이패드2의 화면을 바로 보여줄 수도 있게 됐다. 새 기능이 생겼지만 가격은 기존 아이패드와 마찬가지로 499달러(약 56만 원)부터 시작한다.

애플은 이 제품을 미국에서 11일(현지 시간)부터 판매한다. 25일부터는 일본과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26개국에서도 판다. 아직 한국 판매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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