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제작 우웨이산, 공자 부활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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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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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타도’ 홍위병서 ‘공자찬양’ 예술가로…
“2500년동안 중화문명 관통… 공자, 시대초월한 문화SW”

#1970년대 초반. 문화혁명의 여파로 열 살 안팎의 어린 홍위병이었던 우웨이산(吳爲山) 군은 ‘공자 타도’에 앞장서야 했다. 공자를 조롱하는 만화를 몇 장이나 그렸는지 모른다.
#올해 1월 11일. 중국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 동쪽 중국국가박물관 앞에 거대한 공자 청동상이 세워졌다. 이 동상을 만든 이는 소년 시절 공자 타도에 앞장섰던 그 우웨이산 씨다. 》
세계적 조각가인 우웨이산 중국 난징(南京)대 교수 겸 중국 조소원 원장(49·사진)은 중국 현대사의 명암을 온몸으로 겪어온 증인이다. 그는 최근 중국 조소원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자는 자상하고 지혜롭다”며 “웅장하고 위엄 있는 문화의 태산(泰山)”이라고 공자를 재조명했다.

30여 년 전 문화혁명 기간에 봉건주의를 타파하자면서 린뱌오(林彪)와 공자를 싸잡아 비판하는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으로 배척됐던 공자는 완전히 부활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1월 미국 국빈방문 때도 미국 내 공자학원(중국 정부가 세운 중국 문화 및 중국어 교육기관) 방문이 주요 일정이었다.

○ 공자 비판에서 공자 찬양으로

―지난달 세운 공자 동상은 어떤 의미인가.

“중국은 현재 민족 부흥기를 맞고 있다. 문화의 롼스리(연實力·소프트파워)는 참 중요하다. 공자는 중국 문화의 상징이다. 또 그의 ‘화(和·사이좋음) 사상’은 중국 공산당의 허셰(和諧·화해)사회 건설이라는 이념과 부합한다.”

―동상이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초상화와 비스듬하게 마주 본다. 톈안먼 광장은 30여 년 전 100만 홍위병이 모여 마오 주석과 문화혁명을 찬양한 곳이다.

“동상은 톈안먼 광장이 아닌 국가박물관 앞에 있다(광장과 길 하나 사이). 국가박물관은 중국의 역사를 대표하고 공자는 중국 역사에 녹아 있는 중국 문화를 대표한다.”

―우 교수도 문화혁명 때 홍위병으로 공자를 비판하지 않았나.

“당시 공자를 비판하는 만화를 매일 수십 장씩 그렸다. 어렸고 잘 몰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 공자를 조각할 때 비판적 시각이 문화 거장에 대한 존경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공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나.

“중국 문화의 근원을 찾다 보니 공자가 나왔다. 중국의 한 유명한 교육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역사의 3대 거장은 예수와 석가모니, 공자다. 예수와 석가모니는 종교를 만들었지만 공자는 평생을 인류를 위해 이바지했다. 공자는 2500년 동안 중화문명을 관통하는 아이콘이며 시대를 초월한다.”

○ “성격과 환경까지 모두 파악한 후 조각”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 옆 국가박물관 앞마당에 세워진 공자상. 공자는 문화혁명 당시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최근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 옆 국가박물관 앞마당에 세워진 공자상. 공자는 문화혁명 당시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최근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공자의 모습이 역사서의 표현과 다르다. 공자의 이마는 언덕처럼 튀어나왔다는데….

“당(唐)대에 이르러 공자 초상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역시 상상한 작품이다. 높은 이마, 늘어진 귀, 긴 수염 등 역사서에 쓰인 대로 했다면 예스러운 분위기가 떨어지고 못생긴 공자 상이 나왔을 것이다.”

―어떻게 공자의 모습을 찾았나.

“고법(古法·옛날부터 전해오는 기법)을 썼다. 중국 고대의 석굴조각을 보면 부피의 균형감과 정신의 영구함을 생리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생리 구조에 얽매이지 않았다’란 말은 창조했다는 말 아닌가.

“문화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스며들고 나타난다. 중국 문화 거장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공자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자하고 듬직하면서 지혜롭고 도량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다. 이를 형상화해 공자 동상을 제작했다.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들 ‘춘추 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라고 한다.”

우 교수는 공자 상을 만드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산시(山西) 윈청(雲城)에서 만들어 옮겼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작품을 구상하나.

“성격과 에피소드, 환경까지 모두 파악한다. 살아 있다면 만나 대화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느낌을 받고, 표현할 인물의 형상이 눈과 마음에 생생하게 살아난다. 한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찾으려 한다.”

동양인 최초로 영국 왕실조각가협회(FRBS) 회원으로 활동 중인 우 교수는 그동안 세계의 역사적 인물 400여 명을 재창조했다. 공자와 노자, 이백 등 중국 인사는 물론이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세계의 정치 문화계 인사들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난징대도살 기념관에 있는 작품들과 장쑤(江蘇) 성 화이안(淮安)에 있는 18m 높이의 노자 상을 꼽았다. 특히 노자 상은 청동상의 안을 비워 ‘비움’의 세계관을 표현했다.

―자신의 작품 특징을 짧게 표현한다면….

“가장 중국적인 것과 서양 예술의 만남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살아 있는 이의 초상을 만들지 않았다. 중국 문화의 대표적 인물들이 서양의 조소예술을 통해 환생한다.”

―한국에도 작품이 있나.

“인제대 조각공원에 내가 조각한 도산 안창호 선생 청동상 등의 작품이 있다. 매년 한국을 두 번 정도 간다. 한국 친구가 만날 때마다 김치와 고추장을 준다. 고추장 불고기를 참 좋아한다.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싶을 정도로 맛있다. 진짜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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