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km 떨어진 곳까지 “돌이 비오듯”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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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분화를 시작한 이후 열흘 넘게 화산재를 내뿜고 있는 일본 규슈(九州) 지방의 신모에다케(新燃岳·1421m). 3일 굉음과 함께 3000m 상공까지 화산재를 내뿜었던 진원지다. 화산재는 편서풍을 타고 동쪽 500km까지 꼬리를 남기며 숱한 피해를 남겼다.

○ “숨쉬기도 힘들 지경”


5일 오후 신모에다케로부터 6km가량 떨어져 화산이 한눈에 보이는 다카하루(高原) 마을과 미야코노조(都城) 시는 말 그대로 잿빛도시였다. 잿빛 지붕과 잿빛 먼지, 잿빛 자동차, 잿빛 도로, 잿빛 산…. 도로와 건물 지붕엔 신모에다케에서 날아온 화산재가 두껍게 쌓여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심하게 일었다. 주차장에 늘어선 차량은 화산재 때문에 폐차를 방불케 했다. 간혹 눈에 띄는 사람들은 마스크와 모자에 고글이나 우산을 쓰기도 했다.

대피소로 쓰이는 다카하루 보건복지센터는 화산 폭발 공포를 피해 피난 온 주민 수백 명으로 북적댔다. 당국이 인근 주민 513가구 1158명에게 대피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모에다케에서 6km 떨어진 곳에 산다는 후카미 도시하루(深見利治·64) 씨는 “폭발 소리가 날 때마다 집이 흔들리고 돌이 비 오듯 쏟아졌다. 창문이 깨지고 지붕에 구멍이 났다”며 “돌에 머리라도 맞으면 죽을 것 같아 피난소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집으로 날아온 지름 3∼5cm의 돌을 손에 가득 보여주면서 “현관에는 수북하게 쌓였다” 고 했다. 후카미 씨는 대피령이 상당 부분 해제된 5일 밤에도 “지금도 신모에다케에서 계속 연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집에 가느냐”며 피난소에 눌러앉았다. 신포(新保·51) 씨의 네 가족은 화산 폭발음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어서 대피한 경우다. 신포 씨는 “지붕과 창문틀, 마당에 화산재가 너무 많이 쌓여 숨쉬기도 힘들 정도였다”면서 “돌이 계속 날아와 며칠 밤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떨었다”며 치를 떨었다.

○ 70cm 돌 3km 이상 날아와

마당엔 돌덩이 수북 신모에다케에서 6km 떨어진 다카하루 마을에 사는 한 60대 남성이 마당으로 우박처럼 쏟아졌다는 작은 돌을 한 움큼 들어 보이고 있다. 미야자키=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마당엔 돌덩이 수북 신모에다케에서 6km 떨어진 다카하루 마을에 사는 한 60대 남성이 마당으로 우박처럼 쏟아졌다는 작은 돌을 한 움큼 들어 보이고 있다. 미야자키=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주민들은 한결같이 ‘가사이류(火碎流)’를 가장 두려워했다. 가사이류는 대규모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돌이 마그마와 함께 한꺼번에 산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 지역방송에서는 “가사이류가 발생하면 섭씨 600도가 넘는 용암이 시속 60km 이상 속도로 쏟아지고, 비가 오면 화산활동으로 지반이 약해진 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진흙 홍수가 마을을 덮칠 위험이 있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방영하며 TV나 라디오로 기상주의보를 철저히 챙기라고 당부했다. 신모에다케 정상의 분화구에는 직경 600m, 깊이 110m의 타원형 용암이 덩어리처럼 가득 차 있다. 도쿄돔 야구장의 6배 용암이 한꺼번에 분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모에다케에서 3.2km 떨어진 곳까지 날아온 지름 70cm 정도의 분석(噴石)도 TV 화면에 자주 비쳤다. 70대의 시라다니 가즈미(白谷和美) 씨 부부는 “폭발 징후가 보이면 즉시 피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비상식량과 상비약, 손전등,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초기 피해가 가장 컸던 미야코노조 시 야마다(山田) 마을을 찾은 6일. 눈만 빼꼼 내놓고 남편과 함께 지붕과 집 앞에 쌓인 화산재를 청소하던 다케야마 마쓰코(竹山松子·62·여) 씨는 “열흘 내내 청소했지만 돌아서면 또 쌓인다. 혹시 비가 와서 지붕 위의 화산재가 엉겨 굳어 버릴까 봐 매일 청소한다”며 “그래도 산 너머 미이케(御池) 마을에 비하면 우린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손을 저었다. 미이케로 향했지만 통행금지 표지판이 가로막았다. 신모에다케 반경 4km 이내는 전면 통행금지다. 차에서 내리니 해변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발밑에 화산재가 저벅저벅 밟혔다. 최근 환자가 넘쳐 쉬는 날이 없는 지역 병원에는 기관지와 눈, 피부 환자가 러시를 이뤘다. 기리시마사쿠라가오카 병원의 데미즈 쓰요시(出水毅) 사무장은 “외래환자가 많아졌지만 분화 규모가 커지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며칠 전엔 폭발적 분화로 인한 공기 진동으로 대형 유리창 6장이 깨졌다. 여차하면 입원환자 112명을 피난시켜야 하기 때문에 비상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산 공습으로 지역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의 대표적 축산지역인 미야자키 현은 지난해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 40여만 마리를 도살처분한 데 이어 이번엔 조류인플루엔자와 화산이 동시에 덮쳤다. 프로축구팀 등 6개 스포츠구단이 예정했던 겨울훈련 캠프를 다른 지역으로 돌렸고 호텔 예약도 속속 취소되고 있다. 파크골프장을 비롯한 상당수 골프장이 문을 닫았고 화산 지역에 몰려있는 노천온천도 영업을 포기했다. 비닐하우스와 밭에 내려앉은 화산재 피해를 보지 않은 농가가 없어 피해 면적과 액수가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신모에다케는 화산 봉우리가 줄지어선 기리시마(霧島) 렌잔(連山)의 하나로, 한국과 인연이 깊어 한국 등산객이 많이 찾는 가라쿠니다케(韓國岳·1700m) 바로 옆에 있다. 렌잔에서 가장 높은 가라쿠니다케는 화창한 날 꼭대기에 올라가면 한국이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삼국시대 한반도 이주민들이 고향을 보기 위해 여기를 올랐다고도 한다.

미야자키=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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