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기적의 생환’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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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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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다짐 있었지만 땅속에 묻고 나와… 외부 연락 닿은후 인육 얘기 농담도

매몰된 지 69일 만에 구출된 칠레 산호세 광산의 광원 33명이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에 들어갔다. 광산 인근 코피아포 지역병원에 이송돼 건강진단을 받은 광원 중 3명이 14일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고 외신이 15일 전했다. 에디손 페냐와 후안 이야네스, 그리고 볼리비아인 카를로스 마마니 씨는 이날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정부가 제공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광원들도 16일까지는 귀향할 예정이다. 폐렴 증세를 보인 최연장자 마리오 고메스 씨와 마리오 세풀베다 씨는 만성 규폐증으로 진단됐다. 병원 측은 “33명의 건강에 의학상 어떤 심각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다만 이들의 심리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지하에서 분열 있었다”

8월 5일 매몰돼 생존이 외부에 알려지기까지 17일간의 경험이 어떤 마음의 상처를 남겼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광원 리차르드 비야로엘 씨(23)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광원이 굶주림과 외로움에 지쳐 결국 숨지리라고 믿었다. 우리는 죽음을 기다렸다”고 증언했다. 굶주림 때문에 인육(人肉)을 먹는 일도 생각해봤느냐는 질문에 그는 “외부와 연락이 닿은 뒤 누군가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를 한 것 말고는 전혀 없었다”며 “다만 굶주림에 살이 12kg이나 빠진 내 몸을 보며 내가 나를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원 오마르 레이가다스 씨(56)는 딸이 매몰 직후 상황을 묻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모든 결정이 민주적으로, 다수결로 이뤄졌다”고 한 루이스 우르수아 씨의 말과는 달리 갱도 내에서 갈등도 있었으며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지상에서 캠코더를 내려보냈을 때 28명만 화면에 나온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 33명의 광원들은 지상에서 지하의 일을 모두 다 말하지는 않기로 굳게 서약했다고 한다.

○ 영화 TV 출연 인터뷰 제의 잇달아

이들은 앞으로 각종 영화, TV 출연, 책 발간, 인터뷰 등으로 얻을 수익을 똑같이 나누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칠레 정부에 이 같은 일을 할 재단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외부 ‘유혹’에 서약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이미 칠레 사업가 레오나르도 파르카스 씨는 33명 모두에게 500만 페소(약 1200만 원)짜리 수표를 지급했다. 각국 취재진도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며 인터뷰 요청을 하고 있다. 영국 최고 명문 축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는 33명을 자신의 구장으로 초청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전날 병원을 찾아 “앞으로 어떤 산업의 어떤 작업장이든 산호세 광산 같은 비인간적이고 안전하지 못한 곳이 없도록 철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광원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69일간 기다린 ‘희망 캠프’ 자리에 기념관을 짓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기념관에는 구조 캡슐 ‘불사조’와 각종 굴착 장비, 그리고 지하의 광원이 ‘우리는 살아있다’고 처음으로 외부에 알린 쪽지 등이 보관될 예정이다.

○ 수직갱도 봉인…17일 감사 미사

불사조 캡슐이 33명을 구조해냈던 수직 갱도는 14일 철제 뚜껑으로 봉인됐다. ‘희망 캠프’에 있던 수많은 텐트와 컨테이너 박스도 치워졌다. 33명과 가족들은 17일 이 자리에 다시 모여 감사의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칠레 정부는 25일 수도 산티아고에서 귀환 환영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대통령궁에서는 이들과 구조대원 간의 축구 경기도 열린다.

산티아고(칠레)=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브란테스 주한 칠레 대사 “지구 정반대편, 한국인들 성원에 깊은 감사”

13일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첫 광원이 구조됐을 때 미국 워싱턴의 칠레 대사관은 주미 칠레인들의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서울 충무로의 주한 칠레대사관 앞에선 그런 축제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았다. 대신 한국 내 칠레 교민들은 지구 정반대편 조국의 뉴스를 각자 TV 생방송으로 시청하면서 서로 전화를 걸어 자축했다고 한다. 에르난 브란테스 주한 칠레대사(사진)는 15일 대사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주한 칠레인은 겨우 50명밖에 되지 않는 데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한데 모이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한국인과 칠레인, 외교관 할 것 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주한 칠레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모두 자기 일처럼 여기며 국가적인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광원들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된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칠레와 인연이 없는 대다수 한국인들도 이 극적인 드라마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한국인들의 강한 성원과 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휴대전화나 e메일로 한국인들의 축하메시지가 정신없이 날아들었다. 한국인들의 이런 높은 관심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양국이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는 “칠레 축구선수협회가 광원 33명에게 한국여행을 제안했다”는 외신보도에 대해서는 “아는 바는 없지만 만약 온다면 그들의 행복한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는 올해 2월 대지진, 최근 광원 매몰사태로 위기에 빠졌지만 훌륭하게 대처해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칠레는 인적 자본이 풍부한 나라다. 이번에도 광산 전문가나 엔지니어들이 큰 역할을 했다. 위기극복 에너지의 원천은 칠레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국가 정체성과도 관련이 깊다. 칠레는 북쪽은 사막, 서쪽은 바다, 동쪽은 산맥, 남쪽은 극지를 마주해 지형적으로 고립돼 있고 화산폭발 쓰나미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의 단합이 뛰어나다.”

브란테스 대사는 ‘이번 사고로 광산업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칠레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광업을 사고 한 번 났다고 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브란테스 대사는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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