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銀 총재 ‘변방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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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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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해법’ 번번이 무시당해… 영향력 급감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는 요즘 신세가 초라하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국)의 금융,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ECB 수장이라는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는 쪼그라든 그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트리셰 총재는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기대지 않도록 유럽의 형제국가들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번번이 무시당했다. 독일은 그리스 지원에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트리셰 총재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트리셰 총재가 유럽의회 연설에서 “각 회원국이 그리스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각국이 지원 여부를 둘러싸고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장은 계속 요동쳤다. 난항 끝에 유로존이 11일 IMF와 공동지원 형식으로 그리스 구제에 합의했지만 그는 이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긍정적인 결정”이라는 한마디를 보탰을 뿐이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리셰 총재가 잇단 사태 해결의 핵심에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유로화에 대한 회의와 경제정책을 둘러싼 회원국 간 충돌 등은 책임을 떠맡고 있던 트리셰 총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 의장의 목소리가 더 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트리셰 총재의 영향력 약화는 향후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물론 유로 통화의 존재 가치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벌써부터 유로존 탈퇴 논의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런던의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의 필립 화이트 수석연구원은 “트리셰 총재가 유로통화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함에도 유로의 미래에 영향을 줄 결정들이 대부분 그의 손을 떠났다”고 말했다. WSJ는 “트리셰 총재의 고충은 2011년 선임될 그의 후임자에게 경고가 담긴 교훈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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