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 대참사 한 달… 비 새는 천막촌에도 희망은 움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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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문 열고 전화망 복구
“힘들어도 죽는 것보단 나아”
120만명 텐트촌에서 생활
아이티 정부 “23만명 사망”

12일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아이티를 덮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이날 아이티 정부가 정한 ‘애도의 날’을 맞아 수도 포르토프랭스 중심부에는 대규모 추모 행사가 열렸다. 애도를 표하기 위해 검은색이나 흰색 옷을 입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숨진 가족과 친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직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11일에는 아이티에 폭우가 쏟아졌다. 우기(雨期)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비였다.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끝나지 않은 참사

이날 비가 쏟아지자 캠프촌에서는 “도와달라, 도와달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유엔에 따르면 약 120만 명의 이재민이 500개의 텐트촌에서 지내고 있다. 홑이불과 플라스틱 조각으로 엉성하게 만든 판잣집이 이들의 터전이다. 한 구호단체 관계자는 “우기가 시작되면 모든 게 비에 쓸려가 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나마 임시 텐트조차 없이 지내는 이재민도 적잖다. 유럽연합(EU)의 캐서린 애슈턴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3월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재민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기 위해 병력 파견을 각국에 제안할 방침”이라고 11일 밝혔다. 화장실조차 없는 불결한 텐트촌에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뎅기열 등 질병이 퍼지고 있다.

한 달간 구호의 손길이 세계 각지에서 쏟아졌지만 참사 이전 모습을 되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막스 벨레리브 아이티 총리는 “파괴된 25만 채의 집을 다시 지으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발생 전에도 3분의 2 이상의 국민이 일자리가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실업난은 지진 이후 더욱 심해졌다. 쌀, 옥수수 등 곡식 가격은 25% 이상 치솟았다.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가운데 사망자 규모도 엇갈리고 있다. 아이티 정부는 6일 사망자가 21만2000명이라고 발표했다가 사흘 만인 9일에는 통신장관이 “사망자는 23만 명”이라고 밝혔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이날 아이티 지원 정상회의에서 사망자가 27만 명이라고 밝혔다가 다음 날 “타이핑 실수였다”며 21만7000명으로 정정했다. 아이티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약 23만 명이 목숨을 잃은 2004년 동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에 육박하는 사망자 규모다.

○ 그래도 희망은 솟아난다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나고 주민들의 생활 역시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 파괴됐던 휴대전화망은 어느 정도 복구됐고, 주유소는 다시 문을 열었다. 이는 교통량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다시 나타났다. 거리에 나뒹굴던 시신도 모두 치워졌다. AP통신은 “아이티인들이 이제 스스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의 빈국들까지 아이티 지원에 나서는 가운데 국제사회가 약속한 지원 규모는 총 20억 달러를 넘겼다. 200만 명에게 구호식품이 전달됐고 1500만 L가 넘는 식수가 공급됐다. 미국이 1만3000명의 병력을 파견하고 세계 각국에서 평화유지군을 추가 파병해 아이티의 치안은 거의 지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유엔이 11일 평가했다.

8일에는 지진 발생 27일 만에 생존자가 구조돼 주민들에게 모처럼 위안이 됐다. 48세의 한 남성은 AP에 “상황이 좋지 않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면 살아 있는 친구들을 또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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