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불안에 대처하는 ‘동굴족’ ‘프레퍼족’ 생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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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온라인 광고회사 직원 존 듀란트 씨(26). 미래의 여자친구가 방문할 것에 대비해 화분을 키우며 방 안을 꾸밀 줄 아는 평범한 싱글 남이다. 하지만 얼마 전 3피트 높이의 고기냉장고를 구입하며 사정은 달라졌다. 동물의 내장이나 사슴 갈비뼈 등 고기를 다량으로 구입해 거실 냉장고에 '쟁여놓고' 있기 때문. 혹시라도 여자친구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노심초사 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도시 동굴족(urban cavemen)'이라 부른다.

이상한파, 지진, 연이은 테러위협 등 자연재해와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도시 동굴족' '프리퍼족' 등 생존 불안에 대처하는 새로운 종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도시 동굴족'은 문명이 생기기 이전 야생상태의 원시인처럼 생활하려는 사람을 뜻한다. 먹이를 확보하기까지 굶을 수밖에 없는 고대인처럼 동굴족은 자발적인 금식(禁食)을 즐긴다. 전직 해군장교였던 앤드류 새녹키 씨(38)는 단식 후 폭식을 하는데 그는 "이것이 고대인들이 음식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굶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동굴족의 운동법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헬스클럽에 가거나 요가학원을 등록하는 대신 마스토돈(mastodon·멸종 코끼리)과 같은 동물의 습격에 대비해 단거리 달리기나 점핑에 집중한다. 르 코레 씨(38)는 숲 속에서 빨리 뛰기, 돌 사이로 뛰어다니기, 돌 던지기 놀이 등을 일반인을 상대로 가르치고 있다.

도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뉴욕에서 원시와 야생과 가까운 '동굴족'의 등장은 조금 뜬금없어 보인다. 뉴욕에 살고 있는 동굴족은 "도심 공원에서 나무를 뽑거나 다람쥐를 잡는 것조차 경범죄에 해당하는 뉴욕은 동굴족에게 가장 도전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듀란트 씨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면 인간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 환경에 스스로 대비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한편 뜻하지 않은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생존주의자(survivalist)들도 급증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각종 문제에 대비한다는 뜻으로 '프레퍼족(preppers)'을 소개했다. 과거 생존주의자들이 야외생활을 하거나 지하 벙커를 짓고 종말을 믿었다면 프레퍼족은 다르다. 그들은 거창한 준비보다 일상생활에서 닥칠 교통사고나 도난 살해위협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유전자변형식품 등 다양한 불안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에 거주하는 리사 베드포드 씨는 두 아이를 둔 전형적인 주부. 하지만 2년 전부터 빈방에 캔으로 된 식료품을 쌓아놓고 차 트렁크에 비상담요, 혈액 응고제 등을 갖추며 '프레퍼족'이 됐다. 베드포드 씨는 "2년 전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며 "내가 남들에 비해 특별하다면 2005년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한 후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기억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인지심리학자인 아트 마크만 텍사스대 교수는 "생존주의자와 달리 프레퍼 족은 집과 직업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피해야 할 재난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각자의 방식으로 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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