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 방송속에 암호있다” 사기꾼에 당한 백악관-CIA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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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거짓말 믿고 테러경보… 거액 주기도

2003년 12월 21일 미국 국토안보부(DHS) 톰 리지 장관은 미국의 테러 경보를 ‘코드 오렌지’로 격상한다고 발표했다. 코드 오렌지는 경보 5단계 중 두 번째로 고도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발령한다. 리지 장관은 이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사무실에 출근해 “조만간 9·11테러와 맞먹거나 이를 능가하는 테러 공격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영국, 프랑스, 멕시코 항공사의 미국행 여객기 10여 편의 운항을 취소시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최신호(1·2월호)는 리지 장관이 주장한 ‘믿을 만한 정보’가 한 사기꾼의 속임수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속아 넘어간 백악관과 중앙정보국(CIA), DHS가 ‘테러 경보 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대담한 사기꾼은 미 네바다 주 리노의 ‘e트레피드 테크놀로지’라는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 대표 데니스 몽고메리 씨(56).

그는 알카에다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암호 바코드로 미국 내에서 암약하는 요원들에게 테러 공격을 지시하고 있다며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암호를 풀었더니 테러 공격 목표, 목표의 경도와 위도, 이에 이용될 항공편을 알게 됐다고 CIA에 주장했다.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 CIA는 백악관과 DHS에 알렸고, 결국 ‘소동’이 벌어졌다.

몽고메리 씨의 사기극은 CIA가 그의 기술에 의심을 품으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CIA는 그에게 소프트웨어 암호 해독 기술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게다가 알카에다가 e메일이나 웹사이트 접속 같은 ‘쉬운’ 방법으로 지령을 내리지 않고 복잡한 경로를 이용하는 것도 의심을 살 만했다. CIA는 프랑스 정보국의 도움으로 알자지라 방송을 분석한 결과 그런 암호 바코드는 존재하지 않음을 뒤늦게 알아냈다.

몽고메리 씨는 2004년 이후 여러 건의 민·형사소송에 휘말렸고, 최근에는 100만 달러에 달하는 수표를 부도내 기소됐다. 그의 전 변호인은 몽고메리 씨가 “사기를 일삼는 습관적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 CIA는 몽고메리 씨에게 기술 사용비로 거액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서 하룻밤에 수만 달러를 잃는 등 흥청망청 돈을 썼고, 1억 원을 호가하는 스포츠카를 모는 등 호화 생활을 했다고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증언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미 공군은 올해 초 그와 기술 계약을 맺었다고 플레이보이는 전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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