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한발 양보’만 바라보다… ‘190여개국 만장일치’ 기다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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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회의 예정된 실패

7∼19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기후변화회의)는 ‘구속력 있는 협정’을 만들려던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서로의 감축 목표에 대해 ‘상향조정’과 ‘국제적 검증’을 들이대며 끊임없이 대립했다. 1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조율에 나섰지만 기대했던 ‘극적 타결’은 없었다.

이번 회의가 난항을 거듭한 데 대해 정래권 기후변화대사는 “정치나 경제 협상처럼 주고받기 식으로 타협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협상은 농업 분야에서 다소 손해를 보는 대신 자동차 분야에서 더 나은 조건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기후변화회의는 선진국은 양보밖에 할 수 없고, 개도국은 양보할 것이 없는 구조라는 것.

선진국이 개도국 요구를 받아들여 온실가스 감축 수준을 높이더라도 개도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검증’이나 ‘의무 감축량 설정’ 등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이득이 없는 선진국으로서는 굳이 감축량을 높일 필요가 없다. 개도국은 검증을 받거나 의무감축량을 정할 경우 산업발전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해관계가 다양한 190여 개 당사국들이 만장일치(consensus) 제도를 통해 합의문을 내야 하는 것도 타결을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다. 산업화를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사활을 건 중국에 “현재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될 경우 해수면이 상승해 2100년에는 지도에서 사라진다. 국가의 운명이 달렸다”며 눈물을 흘리는 투발루의 호소는 말 그대로 ‘남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국가들이 만장일치로 하나의 합의문을 채택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사전조율이 해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각 당사국들이 끊임없이 만나 포괄적 입장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행방안까지 조율을 마친 뒤 회의장에서는 형식적 승인만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번 회의를 보면 선진국들 간에도 의견 조율이 되지 않는 등 사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며 “내년까지 시간을 좀 더 벌긴 했지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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