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월가 “구제금융시대 끝났으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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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 은행 빚 모두 상환…“파워 되찾자”
간 커진 CEO들 오바마가 불러도 회의 불참

“전화로 참여해줘서 고맙습니다.”

14일 백악관에서 월가의 9개 대형 금융회사 경영진과 회동을 가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스피커폰에 대고 이렇게 말한 뒤 회의를 시작했다.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모건스탠리의 존 맥, 씨티그룹 리처드 파슨스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 3명이 참석하지 않아 이들을 전화로 연결해 스피커폰으로 회의를 했다. 이들은 타려던 비행기가 공항 안개 때문에 출발이 지연돼 회의에 불참했다.

뉴욕타임스는 15일 대통령이 스피커폰으로 CEO들에게 얘기하는 장면이 월가와 정부 간 힘의 균형이 다시 월가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CEO들이 정말 중요한 회의라고 생각했다면 전날 출발하거나 철도를 이용해서라도 참석했을 것”이라며 “1년 전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회사마다 100억∼250억 달러 구제금융을 주겠다며 워싱턴으로 오라고 했을 때는 단 한 명도 늦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모두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을 상환하면서 월가 구제금융 시대가 마무리되고 있다. 미국 4대 은행인 웰스파고가 14일 지난해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250억 달러의 구제금융 전액을 상환하기로 했다고 밝힘으로써 지난해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 등 미국 거대 은행이 모두 갚았거나 향후 상환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웰스파고의 상환 결정은 구제금융 시대의 ‘코다(coda·종결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 정부에서 구제금융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는 대가로 간섭을 받았던 대형 은행들이 이제 정부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동안 정부 쪽에 기울었던 힘의 균형도 다시 월가로 돌아오는 양상이다. 뉴욕타임스는 “납세자들이 월가의 주인이었을 때 정부가 금융회사 임직원 보수제한을 비롯한 금융권 개혁을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파워를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상황 종료를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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