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학 아버지를 잃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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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새뮤얼슨(1915~2009)

1948년 출간 교재 ‘경제학’
40개언어 번역 400만부 팔려
노벨상 제자 3명 길러내
버냉키 “위대한 스승” 애도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가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MIT는 이날 “새뮤얼슨이 그의 매사추세츠 벨몬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새뮤얼슨은 케인스 경제학과 신고전파 경제학을 종합한 신고전파 종합이론을 확립했으며 처음으로 경제학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인물이다. 제자인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그의 타계 소식을 들은 뒤 “경제학의 아주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한 명”이라고 애도했다.

1980년대 초반 MIT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은 현정택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새뮤얼슨은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경제학도들을 위한 세미나를 자주 열었으며, 폴 크루그먼 등 현재 거목으로 성장한 당시 젊은 경제학자들이 학문 체계를 이루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회고했다.

새뮤얼슨은 1970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가 가르쳤던 학생 중 로런스 클라인(1980년), 조지 애컬로프, 조지프 스티글리츠(이상 2001년) 등 3명도 노벨상을 수상했다. 1915년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난 새뮤얼슨은 16세 때 시카고대에 입학했다. 하버드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1940년 MIT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1947년 정교수 자리에 올랐다.

새뮤얼슨이 발표한 박사논문은 처음으로 기초경제학을 수학적으로 접근해 화제가 됐다. 이 논문은 ‘경제학 이론의 기초’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며, 오늘날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수학적 근거를 찾는 데 자주 이용된다. 현대 경제학이 지나치게 수학적인 모델을 이용하면서 일반인과 멀어진 데는 역설적으로 그의 영향이 컸다는 의견도 있다.

저서 가운데 ‘경제학’은 경제학계에서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경제학과 학부생 교재용으로 그가 1948년 저술한 이 책은 4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400만 부가 팔렸다.

새뮤얼슨의 경제이론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요즘 더 빛을 발한다. 그는 불황기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케인스 이론의 중요성을 꾸준히 설파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케인스 경제학은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불황에 빠지면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고 전했다.

새뮤얼슨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주의자였다. 한때 보호무역의 토대가 되는 이론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미국과 멕시코 모두 소득이 높아질 것”이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했다. 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동료 경제학자 148명과 함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작성했다. 200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보호주의는 일종의 질병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뮤얼슨은 자신을 ‘경제학계의 마지막 제너럴리스트’라 부를 정도로 금융 조세 수학 등 경제학 안팎의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시카고학파의 좌장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반대한 밀턴 프리드먼 전 시카고대 교수(2006년 타계)와는 사사건건 부딪쳤지만 결국 가까운 친구 사이로 남았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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