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학교 폐교’ 부시정책 속도내겠다” 오바마식 ‘흑묘백묘’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안 덩컨 당시 교육부 장관 내정자가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1일 오바마 행정부는 실력 없는 교사를 퇴출시키고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교육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안 덩컨 당시 교육부 장관 내정자가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1일 오바마 행정부는 실력 없는 교사를 퇴출시키고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교육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교육 살리는데 진보-보수 무슨 상관”

‘선택권은 힘이다(Options=Power).’

지난주 미국 워싱턴 시청사 앞 광장. 격자무늬 교복을 입은 100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모여 ‘바우처(voucher) 제도 존속’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 교육예산으로 사립학교에 다니는 이른바 ‘바우처 학생’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도입된 워싱턴의 바우처 제도는 공립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질(質)에 대한 불신 때문에 사립학교를 택한 저소득층 학생에게 연간 7500달러의 장학금을 주는 제도다. 공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는 바람에 자비(自費)로 사립학교를 다니므로 세금의 일정액을 돌려준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진보적 교육단체와 민주당 의원들이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자 학생과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날 시위는 ‘교육 경쟁력 강화’를 국정 지상(至上) 과제로 추진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면한 고민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준다. 대선 때 자신을 적극 지원한 교원노조를 비롯한 진보그룹에선 성과급 확대, 차터스쿨(자율형 공립학교) 확대, 무능교사 퇴출 등을 적극 추진하려는 대통령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교육개혁의 방향이 큰 틀에서 전임 부시 행정부의 지향점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도 크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교육에 관한 한 부시 행정부의 유산일지라도 적극 계승하는 대승적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3월 교육개혁 연설을 필두로 수차례 “교육을 살리는 데 진보 보수의 구분은 없다. 교육경쟁력 강화 없이는 미국 경제의 미래도, 민주주의의 미래도 없다”고 강조해 왔다. “미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1년에 한 달가량 수업일수가 적다”며 수업일수를 늘리고, 엄격하고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성적 테스트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이 같은 다짐은 지난 주말 오바마 대통령이 확정한 2010 회계연도 예산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그는 교사성과급 펀드(TIF)를 기존 9700만 달러에서 7억1700만 달러로 증액했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의 성취를 향상시킨 데 대한 보상으로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하며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 동시에 주(州)들과 지역 교육위원회는 나쁜 교사들을 교실에서 퇴출시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론이 첫발을 디디는 것이다.

그는 또 차터스쿨 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5200만 달러의 기금도 예산안에 반영했다. 1991년에 도입된 차터스쿨은 경쟁 무풍지대에 있는 공립학교를 외면하는 학부모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3500개로 늘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향후 5년간 만성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부진한 공립학교 5000곳을 폐교해 새로 태어나게 한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교사들은 모두 물러나며 새로운 교장과 교사가 임용된다. 성적 부진 학교 퇴출은 이미 부시 행정부 때부터 시행돼 왔는데 오바마 행정부 들어 속도가 붙게 된 것이다.

안 덩컨 교육장관은 장관 부임 전에 시카고 교육감으로 재임하면서 지난해에만도 학교 8곳을 폐쇄한 바 있다. 학교를 잃은 교사들은 무직으로 있거나 다른 학교에 지원해 재고용됐다. 뉴욕의 경우 학교 퇴출로 직장을 잃고 임시교사 등으로 일하는 교사가 1100명에 이른다. 한국계로 공교육 개혁 실행의 선봉에 서 있는 미셸 리 워싱턴 교육감은 23개 학교 폐쇄 계획을 추진 중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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