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 법학자… 당신을 만난건 행운”

  • 입력 2009년 4월 30일 02시 57분


고홍주 원장 美국무부 법률고문 상원 인준청문회
케리 외교위원장 극찬… 공화당도 우호적 분위기

○ 리버먼 의원
“그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몇안되는 초당적 전문가”

○ 고 내정자

“이라크침공은 국제법 위반…美 순리지키는 모범보여야”

28일 오후 2시 15분 미국 상원 덕슨빌딩 4층에서 국무부 법률고문(차관보급)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방청석에 앉은 전혜성 박사(80·여)의 눈에는 자랑스러운 셋째 아들 고홍주(미국명 해럴드 고·55) 예일대 법학대학원 원장의 듬직한 어깨가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8년 당시 국무부 인권·노동담당 차관보에 지명됐을 때도 청문회를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고 내정자의 ‘초국적 법률론(Trans-national Law Process)’이 미국의 이익과 배치된다는 공화당과 보수진영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터라 긴장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상원외교위원회의 존 케리 위원장은 고 내정자를 지칭해 “당대 최고의 법률학자이자 지성”이라고 높이 평가한 뒤 “스마트 외교를 펼쳐나가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고 내정자처럼 완벽한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자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극찬했다. 순간 전 박사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케리 위원장이 방청석에 앉은 고 내정자의 가족에게 환영의 뜻을 전한 뒤 “일부에서 고 원장이 어머니 날(매년 5월 둘째 일요일)에 반대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 자리에 나온 어머니가 아마 그 같은 주장을 일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 전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도 “지난주에 고 원장을 별도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미리 요구한 40개의 질문사항에 성실한 답변을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루거 의원은 공화당 내부의 비판을 감안한 듯 “국무부 법률고문은 개인적인 입장이나 선호와 다를 때에도 미국의 이익과 정책을 방어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고 내정자의 소개에는 조 리버먼,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의원이 나섰다. 두 사람은 고 내정자가 법학대학원장으로 있는 예일대 소재지이자 고 내정자가 소년시절을 보낸 코네티컷 주 출신 의원이다. 두 의원의 소개에서는 고 내정자에 대한 인격적인 존경이 묻어났다.

리버먼 의원은 “고 내정자는 인간적인 따스함과 예의, 명예, 자상함을 두루 갖춘 최고의 친구이자 이웃”이라며 “과거(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너무 빈번하게 사용됐던 단어이지만 그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에서 이미 능력이 입증된 몇 안 되는 법률전문가”라며 “법치의 영역이야말로 고 내정자가 가진 초당적인 자질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도드 상원의원도 “내가 열렬한 고 내정자의 지지자인 이유는 그와의 지연(地緣) 때문인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이민 가정에서 자랐지만 미국을 위한 진정한 봉사의 정신을 실천해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반대파인 공화당 위원들도 날카로운 질문을 펼쳤지만 당대를 풍미하는 법률전문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장면 정권 당시 주미대사관 공사로 일했던 아버지 고 고광림 박사를 따라 5·16군사정변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가족사도 일부 소개됐다. 고 내정자가 “우리 가족은 압제를 피해 여기에 정착했고 미국의 법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혜택을 나에게 가져다 줬다”며 “나의 연구는 이러한 계획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하고 있다”고 답변하자 전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 내정자는 “1970년대 당시 서울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전 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시도를 봤고 군부의 탱크가 시내를 누비는 것을 목도했다”며 “아버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부가 대통령에게 복종하지만 독재국가에서는 군부가 복종하는 힘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고 내정자는 국제법에 대한 자신의 소신도 거침없이 내놓았다.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그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밝힌 뒤 “일방적으로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국제법의 순리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 한 국제법 학술지에 “9·11테러 이후 몇몇 나라들이 국제법을 무시하는 행동을 해 관심을 끌고 있는데 북한과 이라크,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 가장 극명한 예다. 나는 이 국가들을 ‘불복종의 축(axis of disobedience)’으로 부르고자 한다”라고 한 대목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결단코 도덕적인 측면에서 미국을 북한과 동렬에 놓고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미국이 국제법을 솔선수범해 준수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하여금 국제질서를 지키게 할 수 없다는 소신을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방북 경험을 소개한 뒤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낸 뒤 국제법적으로 관여(engage)한다면 미국은 현재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문회 말미에 고 내정자는 법학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내린 세 가지 결론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첫째로 법에 복종하는 것은 국가나 개인을 위해서도 바른 것이라 현명한 행동이며, 둘째로 외교관계에 있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존중해야 하며, 셋째로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킬 때 미국은 더욱 강해지고 안전해진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시간 반 동안의 청문회가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난 뒤 고 내정자는 맨 먼저 전 박사와 포옹했다. 그런 뒤 이날 청문회장에 참석한 여동생 진 고 피터스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 부인 메리 크리스티 피셔 씨와 장인, 그리고 예일대 제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고 원장은 이날 청문회가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참석해 줘서 고맙다”며 인사말을 건넸지만 인준과 관련한 코멘트는 일절 하지 않았다.

큰아들 경주(미국명 하워드 고·57) 씨도 보건부 차관보에 지명돼 전 박사는 어머니날에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을 예감한 듯 함박웃음을 그칠 줄 몰랐지만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미소로만 대신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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